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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곤명중, ‘3.15의거 길’ 사제동행하며 탐하다.
- 기관명(부서) 곤명중
- 등록일시 2025-04-02
자율학교 곤명중학교(학교장 안세환) 전교생 14명과 교사 9명의 사제 모두가 함께 자립과 공존의 목표를 향한 행동으로 2025년 4월 1일, 마산의 3·15의거 유적지를 답사했다.
14명의 학생들은 다모임 시간을 통해 3·15의거에 대한 토론과 협의를 거쳐 답사 동선을 직접 설계하였다. 답사에 앞서 현장에서 해설할 주제 7개를 탐구 과제로 삼아 사전 연구 활동을 진행한 후, 이를 온라인을 통해 공유했다.
답사의 시작으로 국립 3·15 민주 묘지를 참배했다. 학생들과 교사들은 비석을 닦고 잡초를 제거하면서 역사를 바꾼 희생에 보답하는 작은 의식을 함께했다. 유영봉안소에 모셔진 수많은 위패 앞에서 학생들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소설가 한강의 질문을 되새기며 기억하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았다.
곤명 공동체의 답사는 용마고 담장에 자리한 김주열 열사 흉상을 지나 3·15 의거 발원지로 이어졌다. 의거 발원지에서는 김강·하수빈 학생이 ‘3·15의거란 무엇인가’, ‘3·15의거가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정예빈·전규리 학생이 ‘왜 하필 마산이었을까’라는 주제로 준비한 해설을 차분히 이어갔다.
창동예술촌 골목길을 걸으며 잠시 여유를 즐긴 학생들은 오동동파출소 앞에서 오승원의 묘비명을 읽고, 이동훈·하준혁 학생의 ‘누가 발포 명령을 내렸는가’에 대한 기자회견 형식의 해설을 통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국가가 행한 무책임한 행위에 대하여 분노를 표했다. 답사단은 김춘수의 시 「베꼬니아 꽃잎처럼이나」의 싯귀처럼 오동동파출소에서 시청으로 가는 길을 동행하여 의거탑에 이르렀다.
의거탑 앞에서는 배재민·이주연 학생이 준비한 ‘3·15의거가 4·19혁명이 된 이유’에 대한 탐구 해설을 들었다. 혁명의 개념과 3월 봉기에서 4월 항쟁으로의 확산 과정을 짚어내며 참여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무학초 담장 앞에서는 당시 총격 상황을 재연해 보며, 이어 4·19혁명 진원지(구 도립의료원)를 거쳐 김주열 열사 인양지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우현화·홍지희 학생은 ‘김주열 열사의 족적과 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류아인·홍승희 학생은 ‘위대한 어머니 권찬주 여사’에 대해 해설하였다. 위기의 순간에도 담대하고 장중하게 대처하며, 피의 화요일로 상징되는 4·19 당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마음을 위로했던 한 어머니의 용기는 깊은 울림을 주었다. 특히 마산과 전국의 어머니들에게 보내는 권찬주 여사의 편지글 중 “자식 하나 바쳐서 민주주의를 찾는 데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었다면, 남은 삼형제 다 바친들 아까울 게 있겠습니까?”라는 침착한 절규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주연 학생은 “자료 탐구만으로 익힌 내용을 역사의 현장에서 직접 해설하니 감회가 새로웠다.”고 말했고 류아인 학생은 “답사와 해설을 통해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깨우치고, 감사한 분들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남겼다.
한편, 오동동 문화광장의 김명시 생가터에서는 김정섭·김호진 학생이 ‘백마탄 여장군 김명시’에 대해 소개했다. 나라 잃은 암울한 상황에서 왜소한 여성의 몸으로 중국땅에서, 또는 국내 잠입을 통해 무장투쟁, 해방 후 연설가, 사상가, 노동운동가, 여성운동가로서 치열한 삶을 살다 의문의 죽음을 맞은 그녀의 삶을 알리며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져 있던 장군을 깨우는 목소리가 문화광장을 가득 채웠다.
더하여, 의거 발원지 앞 평화인권다짐비 앞에서 일제강점기 인력 수탈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되새기며 영면을 기원하는 묵념을 올리기도 하였다.
곤명중학교 사제의 동행 답사여행은 3·15의거기념사업회의 후원으로 진행되었으며, 학생들은 민주주의의 현장에서 역사의 아픔과 존엄을 함께 배우고 나누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역사의 현장과 마주하는 곤명인의 동행은 계속 될 것이다.
14명의 학생들은 다모임 시간을 통해 3·15의거에 대한 토론과 협의를 거쳐 답사 동선을 직접 설계하였다. 답사에 앞서 현장에서 해설할 주제 7개를 탐구 과제로 삼아 사전 연구 활동을 진행한 후, 이를 온라인을 통해 공유했다.
답사의 시작으로 국립 3·15 민주 묘지를 참배했다. 학생들과 교사들은 비석을 닦고 잡초를 제거하면서 역사를 바꾼 희생에 보답하는 작은 의식을 함께했다. 유영봉안소에 모셔진 수많은 위패 앞에서 학생들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소설가 한강의 질문을 되새기며 기억하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았다.
곤명 공동체의 답사는 용마고 담장에 자리한 김주열 열사 흉상을 지나 3·15 의거 발원지로 이어졌다. 의거 발원지에서는 김강·하수빈 학생이 ‘3·15의거란 무엇인가’, ‘3·15의거가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정예빈·전규리 학생이 ‘왜 하필 마산이었을까’라는 주제로 준비한 해설을 차분히 이어갔다.
창동예술촌 골목길을 걸으며 잠시 여유를 즐긴 학생들은 오동동파출소 앞에서 오승원의 묘비명을 읽고, 이동훈·하준혁 학생의 ‘누가 발포 명령을 내렸는가’에 대한 기자회견 형식의 해설을 통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국가가 행한 무책임한 행위에 대하여 분노를 표했다. 답사단은 김춘수의 시 「베꼬니아 꽃잎처럼이나」의 싯귀처럼 오동동파출소에서 시청으로 가는 길을 동행하여 의거탑에 이르렀다.
의거탑 앞에서는 배재민·이주연 학생이 준비한 ‘3·15의거가 4·19혁명이 된 이유’에 대한 탐구 해설을 들었다. 혁명의 개념과 3월 봉기에서 4월 항쟁으로의 확산 과정을 짚어내며 참여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무학초 담장 앞에서는 당시 총격 상황을 재연해 보며, 이어 4·19혁명 진원지(구 도립의료원)를 거쳐 김주열 열사 인양지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우현화·홍지희 학생은 ‘김주열 열사의 족적과 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류아인·홍승희 학생은 ‘위대한 어머니 권찬주 여사’에 대해 해설하였다. 위기의 순간에도 담대하고 장중하게 대처하며, 피의 화요일로 상징되는 4·19 당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마음을 위로했던 한 어머니의 용기는 깊은 울림을 주었다. 특히 마산과 전국의 어머니들에게 보내는 권찬주 여사의 편지글 중 “자식 하나 바쳐서 민주주의를 찾는 데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었다면, 남은 삼형제 다 바친들 아까울 게 있겠습니까?”라는 침착한 절규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주연 학생은 “자료 탐구만으로 익힌 내용을 역사의 현장에서 직접 해설하니 감회가 새로웠다.”고 말했고 류아인 학생은 “답사와 해설을 통해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깨우치고, 감사한 분들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남겼다.
한편, 오동동 문화광장의 김명시 생가터에서는 김정섭·김호진 학생이 ‘백마탄 여장군 김명시’에 대해 소개했다. 나라 잃은 암울한 상황에서 왜소한 여성의 몸으로 중국땅에서, 또는 국내 잠입을 통해 무장투쟁, 해방 후 연설가, 사상가, 노동운동가, 여성운동가로서 치열한 삶을 살다 의문의 죽음을 맞은 그녀의 삶을 알리며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져 있던 장군을 깨우는 목소리가 문화광장을 가득 채웠다.
더하여, 의거 발원지 앞 평화인권다짐비 앞에서 일제강점기 인력 수탈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되새기며 영면을 기원하는 묵념을 올리기도 하였다.
곤명중학교 사제의 동행 답사여행은 3·15의거기념사업회의 후원으로 진행되었으며, 학생들은 민주주의의 현장에서 역사의 아픔과 존엄을 함께 배우고 나누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역사의 현장과 마주하는 곤명인의 동행은 계속 될 것이다.
첨부파일
더불어, 곤명(昆明)-2025.4.1. 3.15의거길 순례-6784987114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