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미래를 꿈꾸다

바다는 전쟁터, 집은 항구

 




ㅅㅏㅈㅣㄴ 2.jpg


 




바다는 전쟁터, 집은 항구


거제 해녀 엄마 신호진 씨 가족의 하루


 


 


 


엄마는 바다로 출근한다. 아침마다 젖은 잠수복 냄새와 함께 집을 나서는 엄마의 뒷모습을 우리는 늘 현관에서 바라본다. 엄마가 들어가는 바다는 깊고, 차갑고, 때로는 무서울 것 같지만 


엄마는 언제나 같은 얼굴로 말한다. “금방 다녀올게.” 우리는 그 말을 믿는다. 엄마는 늘 돌아왔고, 저녁이면 또 따뜻한 식탁이 차려질테니까.  


 


 


ㅅㅏㅈㅣㄴ 3.png


 


 


 


지금 이 순간이 매일 감사하고 행복해요


매서운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2월, 경남 거제 바다에서 해녀엄마 신지호 씨 가족을 만났다. 지세포중학교에 다니는 첫째 아들 정우현, 일운초등학교에 다니는 딸 정소윤, 그리고 자영업을 하는 남편까지 네 식구.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가족은 각자의 자리에서 바쁜 하루를 보내다가도, 저녁이면 다시 한 식탁으로 모인다. 요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묻자, 호진 씨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지금 이 순간이 매일 감사하고 행복해요.”




해녀들은 늘 ‘무사함’을 먼저 생각한다. 하루 일을 마치고 별 탈 없이 육지로 돌아오는 일. 그게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은 매일 새로 얻는 선물에 가깝다. 가족과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씩 꺼내 놓는 시간. 그 풍경이 ‘감사’라는 말로 정리되는 이유다.


 


 


ㅅㅏㅈㅣㄴ 4.jpg


 




 


ㅅㅏㅈㅣㄴ 6.jpg


 


 




해녀 엄마의 하루는 ‘혼자’가 아니라 ‘같이’ 굴러간다.


엄마가 바다에 나가 있는 날이면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해낸다. 정해진 시간에 숙제를 마치고, 집안일도 곧잘 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둘째 소윤 양은 말한다. 




“엄마가 물질 가는 날엔 저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족은 그렇게 서로의 몫을 나누며 하루를 이어간다. 가끔 엄마가 피곤한 얼굴로 돌아오면 가장 먼저 엄마 곁으로 간다. 조잘조잘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며 어깨를 주물러 주고, 다리를 꾹꾹 눌러준다. 


 


“그보다 더 값진 약이 없더라고요.” 바다가 전쟁터라면, 아이들은 그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를 맞이하는 가장 단단한 응원단이다. 그 작은 손으로 건네는 온기가, 엄마의 하루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ㅅㅏㅈㅣㄴ 5.jpg


 


 


아이들에게 ‘해녀 엄마’는 멋진 어른이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직업이 해녀’라는 건 조금 특별한 일이다. “우리 엄마는 유명한 해녀예요.”




소윤 양은 그렇게 말하며 웃는다. 엄마가 촬영한 영상을 보면 물질을 나가는 모습이 참 멋있게 느껴진다고 한다. 최근에는 엄마와 함께 다큐멘터리 촬영에 참여하기도 했다. 아직 방송되지는 않았지만, 카메라 앞에 선 엄마를 보며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첫째 우현 군은 엄마의 SNS 활동에 관심이 많다. 엄마가 바다에서 찍은 사진을 고르는 데 의견을 보태기도 한다. 


위험이 따르는 직업이지만 엄마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아이들은 ‘불안’보다 ‘자부심’을 먼저 배운다. 땀을 흘려 돈을 벌고, 생활을 책임지고,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어른의 모습. 그 장면은 말로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 마음에 남는다. 엄마의 일을 ‘자랑’으로 말할 수 있는 건, 그 삶이 성실하게 이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거제는 아름답지만, ‘아이를 키우는 생활’에서는 도시와 다른 현실이 있다. 호진 씨 역시 그 차이를 체감한다. 방과 후 사설 학원이나 개인 교습 등의 선택지가 적고, 거리가 먼 곳까지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학원 버스가 없는 경우도 많고, 마을버스는 배차 시간이 길어 아이들이 이용하기엔 어려움이 크다. 하지만 그는 “이대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요즘은 AI와 온라인 강의가 보편화되면서, 연결만 된다면 개인 학습을 이어가는 데 어려움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개인 태블릿을 한 대씩 주시더라고요. 덕분에 아이들 스스로 숙제하고, 인터넷 동영상 보는 게 가능해요.”




태블릿이 일정시간이 지나면 꺼지는 시스템이라 엄마 입장에선 더 안심이 된다. 특히 거제에 와서 가장 좋은 건 작은 동네라서 공동육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엄마가 바다에 나가 연락이 안 돼도 아이들을 옆에서 돌봐줄 이웃들이 넘친다. 물론 아이들도 좋아한다. 처음 도시 친구들과 헤어짐을 아쉬워했지만 도시에 살 때보다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늘었고, 엄마의 얼굴을 더 자주 본다. 학원 수업 대신, 바다 냄새가 나는 동네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생겼다. 환경은 도시보다 단출할지 몰라도, 가족의 시간은 오히려 넉넉해졌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런 생활을 ‘불편’보다 ‘여유’에 가깝다고 말한다. 호진 씨가 말한 “있는 안에서 길을 찾는다”는 태도는, 어느새 아이들의 생활 속에도 스며들었다. 


 


 


ㅅㅏㅈㅣㄴ 7.jpg 




엄마가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것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가장 전해주고 싶냐고 물음에 호진 씨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세상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살아갈 만한 곳이라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이해심, 그리고 자신만의 능력과 개성을 가지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잘 어울리고 성장해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어른을 만나면 인사를 하고, 베풂을 받으면 “감사합니다”를 말하는 것. 아주 기본처럼 보이는 태도들이 사실은 아이들을 가장 단단하게 만든다고 그녀는 믿는다. 가끔은 교육이 거창해 보이지만, 실제로 사람을 만드는 건 작은 습관이다. 호진 씨는 그걸 알고 있는 엄마였다. 그리고 엄마의 바람대로 아이들은 오늘도 거제의 바다와 함께 무럭무럭 커가고 있다.  


 


엄마는 오늘도 바다에 다녀왔다. 엄마의 손은 차갑지만, 우리는 그 손을 꼭 잡는다. 괜찮다는 걸 확인하는 것처럼, 오늘도 무사히 돌아왔다는 걸 기억하는 것처럼. 엄마는 바다에서 많은 것을 건져 올리지만, 우리는 엄마가 돌아오는 순간을 가장 소중하게 모은다. 바다가 엄마의 전쟁터라면, 우리 집은 엄마가 쉬어가는 곳이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내일도 엄마는 다시 바다로 나가겠지만, 엄마는 반드시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