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꿈꾸다
아침이 수업이 되는 학교, 남해 상주중의 특별한 하루

아침이 수업이 되는 학교, 남해 상주중의 특별한 하루
아이들 스스로 하루를 여는 수업
아침 8시, 남해군 상주면의 작은 중학교 운동장에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졸음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이지만, 선생님과 눈을 맞대며 인사를 나누는 표정은 밝다.
남해상주중학교에서 하루의 첫 수업은 교실이 아니라 운동장 밖 모래사장에서 시작된다.

“선생님, 이제 진짜 겨울바다가 됐어요!”
학교 코앞에 있는 상주은모래비치. 모래사장을 걸으며 아이들과 선생님은 서로에게 말을 건네며 자연스럽게 대열이 섞인다. 이 시간은 단순한 체육활동이 아니다. 학생들이 자연을 마주하며 자신의 고민이나 생각을 말하고,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을 풀어내는 정서 회복의 시간이다.
상주중학교 바로 앞에는 해수욕장인 상주은모래비치가 자리하고 있다. 교문을 나서면 곧바로 모래사장과 바다가 펼쳐지는 이 공간은 학교의 일상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아이들에게 해수욕장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걷고 바라보고 숨을 고르며 하루를 준비하는 살아 있는 배움의 장소다.

엄예원(3학년) - 아침에 산책을 나가면 기운이 많이 생겨나요.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움직임이 적을 수도 있는데, 아침에 친구들과 대화하며 걸으니 하루가 활기차져요. 그리고 친구들과 후배들의 얼굴을 다 볼 수 있으니 서로 더 친해질 수 있어요.


산책을 마치고 강당에 들어서자 아이들은 둥글게 둘러앉는다. 아이들은 ‘한주열기’ 발표를 위해 모였다. 이 시간은 학생들이 돌아가며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를 친구들에게 알려주는 학생 주도형 발표 수업이다.
오늘은 3학년 김맑음 학생이 ‘상주중에는 어떤 행사가 있나’를 주제로 친구들에게 설명했다. 아이들은 독도, 강아지, 질병의 종류, 우주, 게임 개발 등 스스로 고른 주제를 정해 조사하고 발표한다.
발표를 듣는 학생들의 태도도 인상적이다. 발표가 끝나자 “그건 왜 그렇게 된 거야?”, “자료는 어디서 찾아봤어?” 같은 질문이 잇따른다.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을 통해 발표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탐구와 토론의 장이 된다.

엄예원(3학년) - 친구들에게 제 생각을 발표하는 건 처음에는 정말 어려웠어요. 지금은 PPT도 능숙하게 만들 수 있고 자신감도 생겨 발표를 잘하고 있어요.

최지우(2학년) - 중학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너무 떨려 말도 제대로 못 했던 기억이 나요. 지금은 익숙해져서 발표하는 게 재밌고, 친구들과 공유하고 싶은 내용도 많아져서 이 시간이 기다려져요.



또 다른 아침 수업은 ‘독서’다. 선생님들이 각자 책을 선정해 독서반을 구성하면, 아이들은 자유롭게 관심 있는 반을 선택해 참여한다. 같은 학년끼리 묶이지 않기 때문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다양한 학생이 한 반에서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교장실에는 책을 읽기 위해 모인 아이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는다. 윤영소 교장도 직접 독서반을 운영하며 학생들과 책을 함께 읽는다. 지금 함께 읽는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이비드 스톤 마틴의 멋진 세계』. 아이들은 책 속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재즈 레코드 재킷을 들여다보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간다. 음악과 그림, 책 내용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이 시간은 상주중 독서반만의 분위기다.
과학실에서는 인류가 어떻게 지구에서 번성하고 문명을 발전시켜 왔는지를 다룬 『지구정복자』를 읽는다. 과학 선생님은 책을 읽다가도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이 시기의 인류 특징은 뭐였을까?” 같은 질문을 던지며 사고를 넓혀준다.
이처럼 다양한 독서반이 10여 개 운영되고 있으며, 학생들은 매일 새로운 내용을 접하며 사고의 폭을 넓힌다.
윤영소 교장 - 교과서처럼 정해진 책이 아니라 아이들이 원하는 공부가 진행되니 흥미가 매우 높습니다. 독서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이 많았지만, 이제는 독서 시간이 훨씬 늘었어요. 학년 구분 없이 읽으며 서로 배움을 나누니까 시야도 넓어지고, 배우는 폭도 커지고 있습니다.




아침은 단순한 하루의 시작이 아니다. 자연 속에서 걷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함께 책을 읽는 이 시간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배움을 발견하고 관계를 넓혀가는 작은 성장의 여정이다.
2015년 대안교육 특성화중학교로 지정된 남해상주중은 전국 단위로 학생을 모집하는 기숙형 대안학교다. 경쟁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정서·관계·자기주도성을 학교 교육의 중심에 두고 운영해 왔다. 아침산책, 한주열기, 독서로 이어지는 독창적인 아침 루틴은 이 학교 교육철학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학생들은 걷고, 말하고, 듣고, 읽으며 하루를 연다. 이 작은 루틴이 쌓여 아이들은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을 존중하며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간다. 남해상주중학교는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배움은 교실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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