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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를 더하다
우리나라 ‘불교 문화·역사의 성지’ 경남
3대 사찰 중 두 곳 통도사·해인사 품은
우리나라 ‘불교 문화·역사의 성지’ 경남
불교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세 가지 보물(불·법·승)을 상징하며 각각 불보사찰·법보사찰·승보사찰로 불리는 우리나라 3대 사찰(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 순천 송광사)은 불교의 교리와 신앙, 문화유산의 보존, 승려 교육의 중심지로서, 한국 불교의 전통과 정체성을 지키는 데 핵심 역할을 해왔다.
각 사찰은 수많은 문화재와 불교 예술을 보유하고 있어, 한국 전통문화와 정신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불교 신앙·문화·승려 교육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아왔다. 이런 3대 사찰 중 두 곳이 자리한 경남은 우리 불교 문화와 역사를 대표하는 성지라 할 만하다. 통도사와 해인사는 또 큰 절의 규모에 걸맞은 다양한 프로그램의 템플스테이 명소로도 알려져 일반인들과 함께 학생들도 많이 찾고 있다.
양산 통도사(불보사찰)

통도사 삼층석탑과 영산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며 연간 130만 명이 방문하는 경남 대표 사찰로,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어 ‘불보사찰’이라 불린다. 사찰이 위치한 산의 모습이 부처가 설법하던 인도 영취산의 모습과 통하므로 통도사라 이름했고, 또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금강계단을 통과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통도라 했으며, 모든 진리를 회통해 일체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에서 통도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646년)에 자장 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창건 당시에 대웅전·적멸궁·법당 등의 건물이 있었고, 금강계단에 진신사리가 안치돼 있어 대웅전에는 부처의 모형인 불상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자장 율사는 이 절에서 금강계단을 쌓고 보름마다 불법을 설파하여 계율종의 근본 도량이 되었다. 그 후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선조 때(1601년)에 유정 대사가 중건했고, 1950년 6·25전쟁 때는 다친 군인들을 받아들여 치료하는 야전병원으로 개방했다.
통도사는 또 1910년대 초중반부터 젊은 불교도들이 독립운동의 불씨를 키워오던 곳이기도 했다. 학생들과 손을 잡고 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통도사 스님들은 경남지역 독립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외세의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저항정신을 이어간 통도사 스님들의 발자취는 오는 12월 14일까지 양산독립기념관에서 만날 수 있다.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탑과 비를 세워 놓은 통도사 부도원
통도사의 문화유산
국보 1점과 보물 8점 등 43종의 다양한 문화재를 보유했다. 국보 인 대웅전 및 금강계단은 통도사의 대표 문화재로, 대웅전에는 불상이 없고 대신 금강계단에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다. 또 통도사 괘불탱(보물), 삼층석탑(보물), 영산전(보물), 대광명전(보물) 등 다양한 불교 미술품과 건축물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통도사 대웅전
통도사 성보박물관

통도사 성보박물관
통도사 입구에 있는 한국 최초의 사찰 박물관으로, 도난·훼손 등의 위험 요소가 있는 사찰 문화재들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보존 전시하는 한편,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불교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1999년 4월 개관했다.
대지 5,000평에 지하 1층, 지상 3층(1,300평) 규모로 실내 전시 공간과 학예연구실, 4개의 유물수장고와 자료실, 보존관리실, 문화센터 등을 갖추고 있다. 소장품은 선사시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별·유형별 총 3만 1,000여 점에 달하는데, 다양한 사찰 전래 유물과 불도들의 기증품, 수집품 등으로 이뤄졌다.
국내 박물관으로는 유일하게 12m 이상 되는 대형 괘불이 중앙 홀에 전시돼 있고, 600여 점에 달하는 불교회화를 소장하고 있어 국내 유일의 불교회화 전문 박물관으로 손꼽히고 있다.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전시된 석조비로자나불좌상
합천 해인사(법보사찰)

합천 해인사 전경
팔만대장경판을 봉안한 ‘법보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의 종합 수도도량이다. 해인사의 ‘해인’은 ‘화엄경’ 중에 나오는 ‘해인삼매(海印三昧·고요한 해면이 만상을 비추듯, 번뇌를 없애고 우주의 모든 것을 깨닫는 경지)’에서 유래한 것으로, 해인사는 화엄의 철학, 화엄의 사상을 천명하고자 하는 뜻으로 이루어진 화엄의 대도량이다. 창건주인 순응은 의상의 불제자로서, 해인삼매에 근거를 두고 해인사라 명명하였던 사실에서 절을 세운 그의 이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화엄의 철학, 화엄의 사상을 널리 펴고자 하였다.
해인사는 신라 애장왕 때 순응 대사와 이정 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화엄 승려 신림의 제자 순응은 혜공왕 때(766년) 중국으로 구도의 길을 떠났다가 수년 뒤 귀국해 가야산에서 정진하였으며, 애장왕 때(802년) 해인사 창건에 착수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성목태후가 불사(불가에서 행하는 모든 일)를 도와 논밭 2,500결을 하사했고, 순응이 갑자기 죽자 이정이 그의 뒤를 이어 절을 완성했다.
해인사의 문화유산

해인사 대장경판
절 자체가 사적이자 명승으로 지정된 해인사가 소장하고 있거나 관련된 국가지정문화재로는 세계기록유산인 대장경판(국보)과 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판전(국보), 건칠희랑대사좌상(국보), 영산회상도(국보) 등 국보 7점과 반야사지 원경왕사비(보물), 석조여래입상(보물), 길상탑(보물), 해인사 동종(보물) 등 보물 21점이 있다. 해인사는 창건 이래 수많은 화재를 겪었으나 팔만대장경을 제작한 선조들의 호국정신이 지켜주는 듯 대장경이 보관된 장경판전만은 온전히 보전돼 왔다.
해인사 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판전
불교 경전의 총서를 가리키는 대장경은 몽골군의 침입을 불교의 힘으로 막아보고자 하는 뜻으로 고려 고종 24~35년(1237~1248)에 걸쳐 간행돼 고려대장경이라고 하며, 판수가 8만여 개에 달하고 8만 4,000 번뇌에 해당하는 8만 4,000 법문을 실었다고 해 팔만대장경이라고도 부른다. 원래 강화도 성 서문 밖의 대장경판당에 보관됐는데, 이후 선원사를 거쳐 태조 7년(1398) 5월에 해인사로 옮겨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 대장경판은 현재 없어진 송나라 북송관판이나 거란의 대장경 내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며, 수천만 개의 글자 하나하나가 오자·탈자 없이 모두 고르고 정밀하다는 점에서 그 보존 가치가 매우 크며, 현존 대장경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완벽한 내용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는 빛나는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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