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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를 더하다

남해 이순신 역사여행



23전 23승의 신화 ‘충무공’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서 남해 이순신 역사여행




 


남해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거둔 23전 23승의 마지막 신화를 장식한 노량해전의 현장이자 이 해전에서 순국한 장군의 마지막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곳이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숨을 거둔 노량 바다와, 주검으로 처음 내려진 땅 관음포 일대에 조성된 충무공 역사·문화공원, 관음포에 내린 충무공의 주검을 처음으로 안치한 ‘충렬사’ 등을 돌아보며 이충무공의 나라사랑과 애민 정신을 되새겨 볼 수 있다.


 


남해 충렬사와 충무공비


남해 충렬사와 충무공비






남해 이순신바다공원




이순신바다공원은 남해 관음포 일대 약 9만㎡의 부지에 2017년 첫선을 보인 역사공원이자 문화공원이다. 관음포광장과 호국광장 두 개의 구역으로 조성돼 있는데, 관음포 광장에는 고려말 왜구를 무찌른 관음포 대첩을 기념한 정지공원과 이 지역 일대에서 이뤄진 고려대장경 판각을 기념한 대장경공원이 있다. 


또한 판옥선 공원, 거북선 공원, 학익진 공원 등 이순신 인물 체험공원과 전통놀이, 신호연 만들기, 거북선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이순신캠퍼스가 있어 아이들이 놀이하며 역사를 알아갈 수 있도록 꾸며졌다. 호국광장은 노량해전 당시의 모습을 4,000여 장의 분청 도자기에 그려낸 초대형 벽화인 ‘순국의 벽’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있다. 이순신바다공원은 2019년부터 무료입장을 이어오고 있어, 언제든지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다.


 


이순신바다공원 전경


이순신바다공원 전경


 


이순신바다공원 내 조형물


이순신바다공원 내 조형물


 


 


이락사(李落祠)




남해 관음포 일대는 선조 31년(1598) 노량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이 순국한 곳이다. 임진왜란의 마지막 격전지였던 이곳에서 이충무공은 관음포로 도주하는 왜군을 쫓던 중 적탄에 맞고 순국하였다. 그 이후 관음포 앞바다는 ‘이충무공이 순국한 바다’라는 뜻에서 ‘이락파(李落波)’라고도 전해진다. 이후 조선 순조 32년(1832)에 이순신 장군의 8세손 이항권이 왕명에 따라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공적을 기록한 유허비를 세웠다. ‘충무이공순신유허비’는 홍문관 대제학 홍석주가 짓고 예문관 제학 이익회가 썼다.


 


이순신바다공원 내 이락사


이순신바다공원 내 이락사


 


해방 후 1950년 남해 군민 7,000여 명이 헌금하여 정원과 참배로를 조성하고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이 ‘이락사(李落祠)’와 ‘대성운해(大星隕海)’라는 현액을 내렸다. 이후 1998년 12월 16일 충무공 이순신 순국 400주년을 맞이해 유언비를 세우고 주변을 정비했다. 이순신바다공원 내에 위치한 ‘이락사’는 임진왜란의 명장 이순신의 공로와 충의가 담긴 역사의 공간이다.






첨망대


 


한려해상국립공원을 따라 남해 노량 앞바다에 이르면 관음포가 바라보이며,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신 곳을 볼 수 있다. 첨망대는 이순신 장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991년 이순신바다공원 내에 건립한 누각이다.


 


이순신바다공원 내 이락사 첨망대


이순신바다공원 내 이락사 첨망대






이순신동상


 


이순신바다공원을 상징하는 조형물로, 이순신 장군의 순국일(1598년 11월 19일)에 맞춰 전체 높이 11.19m로 제작되었으며, 이순신 장군의 탄신 472주년인 2017년 4월 28일에 건립됐다. 바닥은 판옥선이 파도를 가르며 전장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으로 ‘필사즉생 필생즉사(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와 전장에서 군사들을 독려하기 위해 달았던 ‘독전기’에 새겨진 글귀인 ‘독전(싸움을 감독하고 사기를 북돋워 준다)’, ‘범군임적불용명자처참(적과 싸움에 있어서 명령을 어긴 자는 처참한다)’을 각각 새겨넣었다. 동상은 청동 주물로 노량해전 당시 판옥선 장대 위에서 적의 총탄을 맞고도 가슴을 움켜쥐고 끝까지 전장을 지휘하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역동적인 모습과 그 뒤를 따르는 병사들의 용맹한 형상을 묘사하였다. 구조물은 판옥선의 돛대를 형상화해 꼭대기에는 대장선을 의미하는 ‘수(帥)’자의 깃발을 달았다.


 


이순신바다공원 내 이순신 동상


이순신바다공원 내 이순신 동상






남해 충렬사(사적 제233호)




충렬사는 충신과 열사를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을 말한다. 남해 충렬사는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충무공의 유구(遺軀)를 처음으로 안치한 것을 기려서 순국한 지 30년째 되던 인조 6년(1628)에 지역의 선비들이 초가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다. 효종 9년(1658)에 다시 지었으며, 현종 4년(1663)에 통영 충렬사와 함께 임금이 내려준 현액을 받았다. 사당 앞에는 ‘충무이공묘비’와 비를 보호하기 위한 비각, 내삼문, 외삼문, 청해루 등이 있다. 사당 후원에는 충무공의 시신을 ‘초빈(장사를 지내기 전에 시체를 방 안에 둘 수 없는 경우에 관을 바깥에 놓고 이엉 같은 것으로 덮어서 눈비를 가리는 것)’했던 곳에 ‘가묘’가 있다. 사당을 세운 이후에는 충렬사 옆의 호충암에서 화방사의 승장(승려들로 조직된 군대인 ‘승병’의 장수) 1명과 승려 10명이 교대로 사당을 지켰다.


 


남해 충렬사 입구


남해 충렬사 입구


 


남해 충렬사 내부


남해 충렬사 내부


 




충무공 이순신 장군 가묘(假墓)




관음포 앞바다에서 순국한 이순신 장군의 주검은 관음포를 출발해 충렬사에 잠시 ‘초빈’되었다가 고금도를 거쳐 충청남도 아산으로 운구돼 안장되었다. 이 가묘는 당시 이순신 장군을 충렬사 부근에 임시로 안치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이 조성한 무덤이다.


 


남해 충렬사 내 충무공 가묘


남해 충렬사 내 충무공 가묘


 




통제사증시충무이공묘비




충렬사 내삼문 안에 있는 이 비는 통제사 정익의 유지를 받든 학사 민정중의 부탁으로 우암 송시열이 1661년 11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공적을 글로 지은 것을 동춘당 송준길이 글씨로 쓴 것이다.


1663년 현종이 통영 충렬사와 함께 남해 충렬사에도 편액을 내려 사액사당으로서의 위상을 높이자, 통제사인 박경지와 김시성이 묘비를 세웠다. 비각에 편액된 ‘보천욕일(補天浴日)’은 중국 고서인 ‘회남자’에 나오는 여왜가 무너진 하늘을 보수한 이야기와 ‘산해경’에 나오는 태양의 신 회화가 열 명의 아들을 목욕시켜 하늘을 밝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이야기는 조선을 위기에서 구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공훈을 비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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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충렬사 내 충무공 묘비




인문 여행길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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