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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를 더하다
‘마산 3·15의거’ 유적지를 찾아서

4·19혁명 불씨 된
‘마산 3·15의거’ 유적지를 찾아서
부정선거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고, 결국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우리나라 최초의 유혈 민주화운동인 ‘마산 3·15의거’가 올해로 65주년을 맞았다. 학생과 시민들이 분연히 떨치고 일어섰던 3·15의거 발원지인 오동동 문화광장을 시작으로 옛 민주당 마산시 당사에 조성된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과 불종거리, 창동치안센터(당시 남성동파출소), 3·15의거 기념탑을 지나 총격의 현장인 무학초등학교 담장, 마산의료원(당시 도립마산병원), 마산합포구청(당시 마산시청)을 거쳐 마지막 장소인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까지 이어지는 총 2.4㎞의 길. 1960년 3월 15일부터 4월 19일까지 계속된 그 역사의 현장을 되짚어봤다.



3·15의거의 시작 ‘마산 오동동’
1만여 명의 시민이 참여했고, 12명의 시민이 총탄에 쓰러졌던 3·15의거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에 조성돼 있는 ‘소녀상’(인권자주평화 다짐비) 맞은편에 있었던 옛 민주당 마산시 당사 건물 앞에서 시작됐다.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정권 아래 치러졌던 정·부통령 선거일에 부정선거로 인해 선거번호표를 받지 못한 유권자들이 “내 표를 찾아달라”며 당사로 몰려왔고, 전국 최초로 선거 포기를 선언한 민주당 마산시당은 부정선거에 저항해 궐기할 것을 호소했다. 이에 호응한 시민들이 가두시위를 시작했던 그때 그 자리엔 지금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2021년 10월 문을 연 기념관은 연면적 743.84㎡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건립됐다. 지하 1층 영상실에는 ‘3·15의거 다큐멘터리’를 상시 상영하고, 지상 1~3층의 전시실은 각각 ‘깊은 울림’, ‘강건한 울림’, ‘힘 있는 울림’을 주제로 다양한 시청각 자료와 3·15의거 관련 유물이 전시돼 있다.

3·15의거 발원지 바닥 동판

마산 오동동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

경찰에 격렬히 대항한 현장 ‘불종거리’와 ‘남성동파출소’
오동동 민주당 당사 앞에서 출발한 시위대는 마산어시장과 육호광장 사이 불종거리로 몰려들었다.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행진하던 시위대는 진압에 나선 경찰에게 돌을 던지며 저항했는데, 노동자와 구두닦이는 물론 어린 학생들과 부녀자들까지 항쟁의 대열에 참가했다. 시위대는 이어 남성동파출소 앞까지 다다랐고, 이때 미리 대기하고 있던 소방차가 물을 뿌려 시위대를 해산시키려고 했다. 이에 시위대는 “부정선거를 즉시 중지하라.”고 외치면서 파출소를 향해 돌을 던졌고, 경찰은 돌을 던지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 이어진 경찰의 실탄사격으로 앞에 섰던 고등학생 한 명이 쓰러졌고, 시위대는 더욱 격분했다.

마산 오동동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에 비치된 스탬프

무학초등학교 총격 담장
남성동파출소를 지나 시청 방향으로 진격하던 시위대가 무학초등학교 앞을 지날 때 무장경찰이 시위대에게 무차별 실탄사격을 가했는데, 이때 20발 정도의 총탄이 무학초 담장에 박혔다. 이후 1970년 도로 확장 때 실제 총탄의 흔적이 남아 있던 담장은 헐리고, 2014년 원 위치에서 약 10m가량 옆으로 옮겨진 곳에 높이 2m, 길이 11m의 담장을 복원하고 당시 시위 사진, 총탄자국 사진, 상황을 전하는 액자형 알림판도 설치했다. 이는 역사의 현장을 시민들에게 되돌려주고 민주화 교육의 장으로 조성한 유의미한 일이었고, 이후 당시의 교문과 담장을 원래 자리에 옮겨 복원해야 한다는 지역사회의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마산 무학초등학교 총탄자국을 복원한 담벼락

복원된 마산 무학초등학교 총탄자국

3·15의거 현장 3곳에 건립된 기념조형물
당시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해 마산시민과 학생들이 행진했던 주요 현장 3곳엔 기념조형물이 건립돼 있다. 마산합포구 3·15의거기념탑공원과 마산의료원 앞, 마산합포구청 앞이다. 2021년 조성된 3개의 조형물은 각각 다른 모양으로 3·15의거 60주년을 기념하고 부정선거를 자행한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시민과 학생들의 불굴의 정신을 표현했다.
3·15의거기념탑공원에는 당시 의거에 참가한 학생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기 위해 3·15의거 학생참가비를 세웠다. 조형물에는 시위에 참가한 마산고·마산공고·마산상고·마산창신고·마산여고·마산제일여고·마산성지여고·마산간호고 등 8개 고등학교와 해인대학(현 경남대학교) 학생들의 숭고한 정신을 비문에 새겼다.
‘정의로운 분노가 피운 위대한 애국심의 꽃이었으니’라는 제목의 마산합포구청 앞 조형물 비문에는 3·15의거를 대한민국 최초의 시민불복종 운동으로 평가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김주열 열사 시신이 옮겨진 뒤 시위가 벌어진 현장인 마산의료원 앞 조형물은 ‘김주열 열사의 주검이 살아있는 독재정권을 무너뜨렸으니’라는 제목으로 의거 당시 마산중앙부두 앞 바다에서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떠오른 김주열 열사에 대한 추모와 존경, 감사하는 내용을 담았다.

마산합포구청 앞에 건립된 3·15의거 기념조형물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1960년 당시 마산상업고등학교(현 용마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렀던 김주열 열사는 3월 15일, 자유당 이승만 독재정권이 저지른 부정선거에 항거한 시위에 가담해 행진하던 중 행방불명되었다. 그로부터 27일 후인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열사의 시신은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끔찍한 모습이었다. 독재자의 하수인인 경찰들이 쓰러진 열사를 바다에 버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주열 열사의 시신은 표지판 뒤쪽 세 번째 쇠말뚝이 있는 해안 벽 약 3m 앞 바다 위에서 발견됐고, 이에 분개해 일어난 2차 마산 시민봉기의 불길이 전국으로 번져 마침내 4·19혁명을 이루었다.

마산합포구 해양누리공원 끝에 설치된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표지판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를 알리는 동판

국립3·15민주묘지
1960년 3월 이승만 독재정권의 부정부패와 부정선거에 항거하다가 희생된 마산시민들을 기리기 위해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동에 조성된 국립묘지이다.
1969년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3·15의거 희생자 묘 13기를 이장하면서 조성된 이후 1998년 3·15성역공원 조성공사가 시작됐고, 2002년 8월 1일 대통령령에 따라 국립3·15묘지로 승격된 후 2003년 3월 15일 준공됐다. 국립3·15민주묘지는 순국선열의 고귀한 넋을 기리는 추모의 공간이며 인권 수호의 중심이었던 3·15의거 정신을 후대에 길이 전할 민주화의 역사 교육장이다.

국립3·15민주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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