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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를 더하다
우리가 만든 장면들, 박억부·최복심 부부

박억부 할아버지(86세) 최복심 할머니(83세)
남해 바다가 푸르게 내려다 보이는 삼동면 물건리 대지포마을의 언덕.
이곳은 박억부·최복심 부부에게 특별한 곳이다.
일찍부터 두 사람이 부부가 되길 약속한 고향 마을이자,
이제는 머나먼 너머의 시간을 준비하며 노후를 보내는 휴식처이기 때문이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젊은 날부터 사진과 영상 촬영을 즐겨하던 박억부 어르신이
그동안 찍은 사진, 영상을 오롯이 보관해 둔 장소이기 때문이다.
60년을 해로하며 부부, 그리고 그의 가족이 만들어 온 장면을 만나기 위해 남해로 향했다.
사진?영상으로
성실하게 기록한 60년
박억부 어르신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가자 창 너머 푸른 바다와 함께,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캠핑 의자가 눈에 띄었다. 오랜 시간 앉아있기 좋게 푹신한 털 담요가 깔린 캠핑 의자는 두 사람의 전용 관람석이기도 했다. 박억부 어르신이 직접 찍고 편집한 가족 영상을 보는, 추억행 전용 관람석.
“그냥 사진 찍는 게 좋더라고요. 서른 넘어서인가 조금 여유가 생겼을 때 카메라를 하나 샀어요. 독일제 ‘라이카’라고, 필름을 감아서 찍는 걸 샀는데 그걸로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그래도 먹고살기 바쁘니까 사진만 찍으러 돌아다니긴 어려웠고, 가족들 모일일이 있을 때는 빼놓지 않고 찍었지요.”

01 박억부 할아버지의 폭넓은 관심사를 보여주는 게임기와 오디오

02 요즘 즐겨 사용하는 비디오카메라를 설명하는 할아버지

03 오래된 비디오카메라와 기록용 도구들
이후 ‘소니’사에서 나온 8mm 비디오카메라를 구입하며 영상 촬영에도 재미를 붙였다. 당시만 해도 8mm 필름을 현상해 주는 곳이 없어 일본까지 보내기도 하고, 직접 찍은 사진을 슬라이드에 넣어 감상하기도 하는 등 취미의 반경을 넓혀갔다. 여전히 기록 대상은 가
족이었다.
“나도 모르게 생을 기록해야겠다,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글재주가 좋으면 글을 남겼겠지만 그렇게는 못했고 사진이 좋겠다 싶었지요. 어느 순간이되니까 찍어둔 게 쌓이기만 하고 ‘그냥 찍기만 해서는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단골 카메라 가게에서 ‘피나클’이라는 편집 프로그램이 있다고 알려줘서 CD로 사와서 편집도 시작했지요.”
이후 카메라는 8mm에서 6mm로, 필름에서 디지털로 급속하게 변해왔지만 그의 촬영 열정은 변하지 않았다. 손자 손녀가 태어난 순간부터 아내의 칠순 잔치까지, 가족 여행이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촬영 전담 기사로 변신했고 그렇게 가족의 기록은 셀 수 없을 정도
로 풍성하게 쌓였다. 특히 올해는 그동안 쌓여있던 종이 사진을 모두 스캔해 USB(이동식저장장치)에 담아 이전보다 쉽게 원하는 사진을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영상을 보니 자막에 배경음악까지, 무엇 하나 허투루한 것이 없다. 직접 영상에 자막을 넣고, 영상을 보기위해 TV 모니터를 연결하고, ‘USB’ ‘SD카드’ 등을 낯설지 않게 말하는 여든여섯의 어르신을 보며, ‘머물러있지 않는 삶’이 주는 작은 감동이 느껴졌다.

04 최복심 할머니의 칠순잔치 영상을 관람 중인 두 사람

05 사진 촬영 외에 엽서, 우표 수집도 즐겼다

06 가족의 모습이 담긴 6mm 테이프
두 손 맞잡고
애틋하게 살아온 60년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집안끼리도 알고 지내던 동네 ‘오빠 동생 사이’였다. 당시로선 흔치 않던 연애결혼이었는데, “제대 후 청혼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며 두사람은 부부가 되었다. 그게 1963년 1월 4일의 일이니, 벌써 60년이 넘었다.
이때도 사진과 관련된 기억은 빠지지 않는다. 당시에는 남해와 삼천포를 잇는 다리가 없어 여객선을 타고 삼천포까지 나가 약혼 사진을 찍었다. 한복과 양복을 멋스럽게 차려입은 두 사람의 모습은 60년 세월이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말갛게 빛났다.
결혼 후에는 부산으로 가 군복을 염색약으로 물들여 작업복으로 만드는 일을 했고, 첫째 딸을 낳은 후에는 고향과 가까운 삼천포로 이사해 멸치 가공부터 얼음 공장까지 모두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일을 했다.
가진 것 별로 없이 시작했지만, 타고난 세심함과 성실함으로 부부는 세월과 세상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부부가 성실하게 산 흔적은 지금도 창고에 표창장이며 상패로 또렷하게 남아있다.

07 고향인 대지포마을 언덕에 함께 선 부부
“손주며 자식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인백기천(人百己千)’. ‘다른 사람이 백 번 노력하면 나는 천 번을 노력한다’는 뜻인데, 고운 최치원 선생이 중국 유학 시절부터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던 말이에요. 얼마 전 추석 때도 손자에게 ‘준영아, 할아버지가늘 뭐라고 말하지?’ 하니까 자동으로 ‘인백기천이요’라고 대답할 정도로 내가 자주 하는 말이에요.”
늘 가족과 함께한 기억과 추억을 들여다보며 산 덕분일까. 부부는 60년을 살면서 지금까지 큰 다툼 한 번 없었을 정도로 화목한 삶을 꾸려왔다. 몇 년 전까지만해도 3대가 모두 모여 1년에 한 번씩 여행을 떠났는데, 손자 손녀가 성인이 된 지금은 저마다 일정이 바빠 다 함께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 부부의 유일한 아쉬움이다.
가장 큰 기쁨 역시 아이들에게서 온다. 부부의 요즘가장 큰 즐거움은 증손녀가 자라는 모습을 보는 일인데, 슬하의 삼남매 중 큰딸이 아들 셋을 낳았고, 그 아들 셋 중 막내가 올해 3월 아빠가 된 것이다. 하루에꼭 한 번, 손자가 보내오는 사진이며 영상을 보는 일이 요즘 부부에게 가장 큰 낙이다.
박억부·최복심 부부가 60여 년을 함께하며 만든 장면 몇몇을 함께 돌아보고 있자니, 부부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지 또렷이 느껴졌다. ‘가장 젊은 날, 오늘’을 보다 잘 기록하기 위해 쉬지 않고 배우려 했던 자세, 그리고 젊었던 날의 모습을 애정 어린 눈으로 자주 들여다보는 일. 그것이 부부가 오래오래 행복에 머무는 비결 같았다.
글 임승주 / 사진 백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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