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만나다
판소리에 푹 빠지다, 사천 사남초등학교 구민정
판소리에 푹 빠진 국악소녀
사천 사남초등학교 5학년 구민정
열두 살. 누군가는 아직 꿈을 확신하기 이르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곱 살에 이미 자신의 꿈을 알아본 민정이는 말한다. 판소리는 자신에게 가족과도 같다고.그 이유를 물으니 단정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한다. “제 삶에서 없으면 안 되는 것이라서요.” 케이팝(K-pop)이 훨씬 익숙한 나이. 유행하는 옷차림보다는 한복에, 누구나 따라 부르는 가요보다는 판소리의 매력에 푹 빠진 국악 소녀. 민정이가 부르는 소리를 따라, 민정이가 꾸는 꿈을 따라 함께 가보자.

한복으로 시작된
판소리를 향한 사랑
민정이는 처음 판소리에 마음을 빼앗긴 순간을 기억한다. 일곱 살의 민정이는 당시 한복에 푹 빠져있었다. 한복이 너무 예뻐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고, 어느 날엔 한복을 입은 채로 잠이 들었다. 하루는 유튜브에서 한복을 입고 노래를 하는 사람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아 따라 부르게 되었다. 부르다 보니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 노래가 바로 판소리였다.
“민정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판소리를 배우고 싶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반대했었죠. 제가 너무 모르는 분야이기도 하고, 사천에서는 마땅히 배울 데도 없더라고요. 그런데 민정이가 워낙 배우고 싶어 하는 마음을 보여서 진주에서 배울 곳을 찾아봤어요. 그때는 민정이가 너무 어려서 세 살 차이 나는 큰딸을 같이 배워보라고 보냈죠.” 최효선(어머니)
그러나 좋아하는 마음은 누군가가 대신 정해줄 수 없는 것. 집을 떠나 소리를 배우기 위해 합숙 생활을 하던 중, 집으로 오고 싶어 울며 전화하는 큰딸과 다르게 민정이는 꿋꿋하게 그 시간을 버텨냈다. 그 모습을 보며 최효선 씨도 딸의 꿈을 지지해 주어야겠다 마음먹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 말, 개인 사정으로 판소리 공부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때의 민정이 모습을 어머니는 이렇게 회상한다.
“사실은 민정이가 금세 그만둘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만 두기 싫다고 울고, 피아노를 배워보라 했더니 멍하니 앉아있기만 하더라고요. 그러고는 혼자서 유튜브를 보며 판소리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아, 얘는 그만 둘애가 아니구나, 생각했죠.” 최효선(어머니)
“유튜브를 찾아보니 제 마음을 가장 울리는 분이 바로 김율희 선생님이셨어요. 선생님께 꼭 소리를 배우고 싶었는데 다행히 저를 제자로 받아주셔서 지금도 감사한 마음으로 배우고 있어요.”

▲ 서울로 가는 차 안에서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 최근 참가한 전국청소년국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사랑하는 만큼
더 노력하게 돼요
민정이는 매주 토요일, 판소리 공부를 위해 서울로 향한다. 새벽 네 시 집을 나서야 하는 민정이와 동행하는 것은 언제나 엄마 최효선 씨다. 주말이라 왕복 열두 시간이 넘는 시간을 운전해야 하지만 최효선 씨는 민정이를 위해 시간과 마음을 아끼지 않는다. 그 고마움을 아는지 민정이는 서울을 오가는 차 안에서도 늘 소리 연습을 한다.
“가족들이 항상 저를 응원해주세요. 할머니께서는 제가 방송 나온 것도 다 챙겨 보시고 주변에 자랑도 많이 하세요.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는 제 방에 연습실을 만들어주셨어요.”
민정이의 방 한편에는 미닫이문으로 분리된 작은 연습실 이 있다. 작지만 혼자 소리에 집중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거울이 붙어있는 책상에는 지금 배우고 있는 판소리 책이 놓여있다. 민정이는 하교 후 집으로 돌아오면 매일 두 시간씩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주말에 배운 소리를 따라 부르고, 고치고 싶은 점과 궁금한 점이 있으면 책에 기록한다. 민정이가 연습하는 동안엔 가족들도 방해하지 않는다.
“최근에 민정이가 목소리가 잘 안 나와서 많이 힘들어했어요. 연습을 하면서도 많이 울고, 자신감도 많이 떨어져서 민정이를 보는 마음이 참 아팠어요.” 최효선(어머니)
민정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참가한 <사천 수궁가 전국 판소리 고법·경연대회> 수상을 시작으로 제28회 전국 청소년 민속예술 경연대회에서 판소리 부문 대상을 차지했다. 열 살이 되기 전에 이미 재능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 후 여러 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국악 관련 방송에도 여러 번 출연했다. 하지만 민정이가 고학년이 되면서 마음만큼 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시기가 찾아왔다. 속상한 마음이 컸지만 민정이는 포기하지 않고 더욱 연습에 매진했다.
그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일까. 11월 초 경북 구미에서 열린 전국청소년국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번 대회에서 춘향가 중 이별 대목 1절 통곡을 불렀어요. 노래 자체가 매력적이고 제 목소리와도 잘 어울리거든요. 걱정이 많았는데 대상을 받게 되어서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 민정이의 꿈을 누구보다 응원해주시는 할아버지

▲ 민정이의 소리 선생님, 김율희 선생님과 찍은 사진
판소리 하면 구민정을
떠올리면 좋겠어요
민정이는 학교에서 전교 부회장을 맡고 있다. 당선 비결을 물으니 민정이는 자신의 노래 실력을 꼽았다.
“선거를 앞두고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있어요. 친구들은 판소리를 지루해하니까 당시 가장 인기 있는 곡인 <사건의 지평선>을 불렀는데 친구들이 무척 좋아해줬어요. 저의 노래로 친구들의 마음을 빼앗은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 학교에서 민정이의 별명은 어린이 명창이다. 친구들은 방송에도 여러 번 출연한 민정이를 우리 학교 연예인이라며 자랑스러워한다. 민정이의 담임 선생님도 든든한 응원군이다.
“이번에 <아이좋아 경남교육> 소식지에 출연한다고 하니 담임 선생님께서 너무 잘됐다며 안아주셨어요. 제가 목 상태가 좋지 않아 고민할 때도 민정이는 최고라고, 꼭 잘될 거라고 응원해주셔서 힘을 얻었어요.”
국악보다는 케이팝이 훨씬 더 익숙한 나이. 민정이가 생각하는 판소리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노래로 부르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요. 심청가는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을 부를 땐 눈물이 날 만큼 슬프기도 하고요. 그리고 제 노래로 이야기를 전할 때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또 판소리는 하면 할수록 어려운데요. 어려울수록 더 매력이 깊어지는 것 같아요.”
민정이는 최근 사천시인재육성장학재단에 대회 상금으로 받은 200만 원을 기부했다. 지난해에는 사천시 저소득층 가구를 돕기 위해 200만 원을 기부했다. 소리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을 잘 도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런 민정이의 꿈은 인성이 바른 소리꾼이 되는 것이다.
“국악을 더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어서 서울에 있는 국악중학교 입시를 준비하고 있어요. 제가 가고 싶은 과는 전국에서 두 명만 뽑는다고 해서 걱정이 되지만 열심히 노력할 거예요. 그리고 할아버지 말씀처럼 인성이 바른 소리꾼, 자랑스러운 소리꾼이 되고 싶어요.”
덧붙여 민정이는 ‘판소리’ 하면 누구나 구민정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말했다. 오늘도 자신의 작은 연습실에서 연습에 매진하고 있을 국악 소녀. 하루하루 민정이는 자신의 꿈을 향해 자라고 있다.

글 김달님 사진 백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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