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당자 정보
-
- 담당부서홍보담당관
- 전화번호055-278-1788
재미를 더하다
경남의 한글학자
여섯 번째
경남의 한글학자

이달에는 제577돌 한글날을 맞아 경남의 한글학자를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말모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으로 주시경 등이 1910년 무렵에 조선 광문회에서 편찬하다 끝내지 못했는데요. 이후 1930년 한글날 기념식 석상에서 108명의 발기로 조선어사전편찬회가 만들어져 사전 편찬이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졌고, 1942년 10월~1943년 4월 33명이 일제에 붙잡혔습니다. 33명 가운데 경남 지역 출신 이윤재 선생과 이극로 선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01 김해나비공원 내 이윤재 선생 기념조형물

02 한글을 주제로 한 전국 최초 공립박물관인 김해한글박물관의 제1전시실.
관람객이 직접유물들이 어떻게 보관되어 있는지 볼 수 있다

03 김해한글박물관 내부
한뫼 이윤재(1888~1943)
김해에서 태어난 한뫼 이윤재 선생은 일제강점기 한글 운동에 헌신한 분입니다. 그의 호는 ‘큰 산’을 의미합니다. 이윤재 선생은 야학 교사로 일하며 국어 연구·한글 보급을 펼쳤습니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평양 감옥에서 3년간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40여 종의 신문·잡지에 글을 발표했으며 일제의 탄압 아래 꾸준히 우리말을 연구·보급한 조선 어학회의 각종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이윤재 선생은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두 번째 옥고를 치르게 되는데요. 수양동우회는 1926년에 이광수 등 지식인들이 계몽 운동과 독립운동을 위하여 국내에 조직한 흥사단 계열의 단체로 일제가 1937년에 수양동우회와 관련된 지식인 180여 명을 검거했습니다. 이후 이윤재 선생은 조선어학회에서 조선어 사전 편찬 작업을 해오다가 1942년 일제에 불시의 습격을 당했습니다.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인데요. 이윤재 선생은 고초를 겪다 함흥 감옥에서 1943년 12월 8일 순국했고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04 영화<말모이>중 한 장면. 조선어학회 대표 류전환(윤계상 분)의 실제모델이 이극로 선생이다
고루 이극로(1893~1978)
의령에서 태어난 고루 이극로 선생은 1927년 독일 베를린대를 졸업한 후 귀국해 한글 운동에 앞장선 인물입니다. 그의 호는 ‘골고루’에서 따왔다고 전해집니다. 특히 이극로 선생은 사전 편찬 기금을 모금하는 데 핵심적으로 활약했는데요. 이극로 선생은 건축업을 하는 사람을 설득하여 1935년 그의 건물을 조선어학회에 사례하게 했고 사전 편찬 비용을 확보하고자 비밀 후원회를 조직하기도 했습니다. 이극로 선생은 일제로부터 조선어학회 회원 중에서 가장 무거운 징역 6년을 받았는데요. 함흥 감옥에서 복역하다가 1945년 석방되었습니다. 이극로 선생은 1948년 월북했다는 이유로 업적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독일 베를린대에 조선어강좌를 개설해 우리말을 가르쳤고 이광수의 〈허생전〉을 활자로 찍어 내는 등 우리말과 우리글을 보존하는 데 앞장선 인물입니다. 귀국 후에는 조선어연구회에 입회하여 어문 운동을 펼쳤고 특히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의 실질적 대표로서 우리말 사전 편찬을 진두에서 지휘한 사람입니다. 한편 의령군은 국립국어사전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자 국회와 경남도청에서 지난해 ‘국립국어사전박물관 의령 건립을 위한 학술발표회’를 열었고,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담당 부서와 협의 중이라고 합니다.
글 경상남도교육청 홍보담당관 국어전문가 김민지
CK_tica101m19080658.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