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만나다
나무의 표정을 읽는 사람 나무의사 장재영

나무의 표정을 읽는 사람
나무의사 장재영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때때로 아프다.
그래서 사람 곁에는 의사가 있고, 동물 곁에는
수의사가 있으며, 나무 곁에는 ‘나무의사’가 있다.
나무의사 제도는 ‘나무 돌보는 법’으로 알려진
개정 산림보호법에 따라 2019년 도입됐다.
지금까지 배출된 나무의사는 전국에 1,100여 명.
나무에 활력과 생명력을 불어넣는 나무의사의 세계를
장재영 원장에게 들어보았다.
나무 청진기를 들고 왕진 가는 ‘나무의사’
“저희는 이 차를 나무병원 앰뷸런스라고 불러요.” 나무를 진단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인근 공원으로 향하는 길에 장재영 원장이 말했다. ‘앰뷸런스’ 트렁크에는 왕진 가방
이라 불러도 될 법한 장비 가방이 두 개, 한눈에도 무거워 보이는 기계들이 여럿 실려있다. 대표적인 장비는 ‘나무 청진기’라 불리는 수목활력도측정기. 나무에 탐침 부분을 꽂아 나무 내부에 있는 수분과 이온 함량을 측정해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장비이다. 이외에도 토양진단기, 답압측정기 등 장비를 활용해 나무 주변의 환경까지 진단하는 모습이 진짜 의사
와 많이 닮아있다.
“나무가 있는 곳까지 왕진을 가고, 증상에 대해 대화할 수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사람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과정과 비슷해요. 사람의 생활 환경과 습관을 확인하듯 나무 주변의 토양 상태를 확인하고, 증상에 맞는 약을 사용하고, 필요할 때는 외과적 수술도 합니다.”


01 나무의 썩은 부분을 파내고 약품처리 후 황토를 바르고 있다 02 속이 썩은 나무는 안전사고로 이어질 우려가 있어 꼭 치료가 필요하다

03 나무 진단에 필요한 장비를 정리 중인 나무의사
나무는 평생의 숙제
장재영 원장은 2021년 나무의사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조경
식재공사업을 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조경 관련
업무를 해왔지만 나무의사가 되는 일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수목생리학, 토양학, 병리학, 해충학, 관리학 등 나무의 삶을
둘러싼 모든 것을 알아야 했다. 실제로 나무의사는 합격률이
20% 내외일 정도로 어려운 시험으로 알려져 있다.
“나무의사들끼리는 ‘나무는 평생의 숙제’라고들 해요. 책에는 ‘이 나무는 이러이러한 환경에서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라고 적혀 있지만 실제 현장에 가보면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싶을 정도로 잘 자라고 있는 나무들도 있어요. 살아있는 생명이다 보니 자연과 환경에 적응을 한 거죠. 이론과 경험이 두루 필요한 일이에요.”
나무가 아픈 이유는 다양하다. 병충해를 입기도 하고, 햇빛을 너무 많이 받거나 너무 적게 받아도, 뿌리가 너무 얕거나 너무 깊게 심겨 있어도 문제가 생긴다. 특히 나무의사는
5월부터 9월 사이가 가장 바쁜데, 습도가 높은 계절인 만큼
나무가 쉽게 썩고 병해충 번식도 빠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채취해 온 소나무 시료라며 보여준 나뭇가지에서는 여름철
크게 기승을 부린다는 가루깍지벌레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육안으로는 그저 흰 가루처럼 보였지만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니 꿈틀꿈틀, 벌레가 분명했다.
“‘의사’라는 단어 때문인지, 가운 입고 펜 들고 마냥 깔끔한 일만 하는 직업이라 생각하는 분들도 있어요. 사실은 흙
묻고 벌레 붙는 일은 일상이고, 산도 자주 타야 하고, 얼마
전에는 감나무를 치료하러 갔다가 차 바퀴가 빠진 적도 있고… 돌발 상황이나 체력적인 면도 어느 정도 각오하고 시작해야 해낼 수 있는 일이에요. 그래도 고사 직전의 나무가
제 손에서 살아나는 걸 보면 보람을 많이 느껴요.”


04 소나무 시료를 현미경으로 분석 중인 장재영 원장 05 수목 진단의 기본, 수목활력도측정기
반려식물, 반려수목
어떤 나무는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도 한다. 한 학교에서
만난 소나무는 수세가 처지고 솔잎이 누렇게 변색돼 학교
사람들의 걱정을 사던 중이었다. 해당 소나무는 특히 중앙
현관 바로 옆에 있어 보는 눈이 많았던 상황. 진단 결과 토양이 문제였고, 생육 환경 개선 작업 끝에 소나무는 초록을
되찾았다.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교정의 아름드리 플라타너스나 금목서 향기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듯, 학창 시절 추억의 중심에 나무가 서 있을 때가 종종 있다. 더욱이 수십
년 동안 한자리에서 학생들과 함께 성장해 온 소나무라면,
그런 나무를 맥없이 떠나보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반려식물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나무가 상하면 ‘그냥 베어내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옛날 일이고, 요즘은 사람들
의 인식도 많이 바뀌어서 나무도 생명이고 친구라 생각하는 분들도 많아요. 수목과 관련된 과학기술도 많이 발달했으니 그런 부분을 잘 활용해야죠.”
장재영 원장은 우리 주변에 흔한 수종 중 하나인 소나무는
‘참을성이 많은 나무’로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는 반면, 활엽수는 증상이 빠르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안타까운 것은 보통 사람들이 나무의 병증을 인식하고 나무병원에 연락했을 때는 이미 한발 늦은 경우가 많다는 것. 사람이 정기검진이나 예방접종으로 건강을 관리하듯 나무도 예찰이
필요한 이유라고 했다.
“저희는 학교나 아파트, 기업, 관공서 등 생활권에 있는 수목들을 주로 다루는데, 연간 관리로 나무를 돌보기도 해요.
주기적으로 방문해 나무 상태를 확인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확인하고 처치하는 거죠. 요즘처럼 봄이 일찍 시작되는 등
이상기후가 나타날 때는 이런 연간 관리가 나무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되죠.”
나무의 표정을 읽는 사람, 나무의사. 그래서 장재영 원장은
나무의사가 가져야 할 자질로 관찰력과 집중력을 꼽았다.
평소 자연에 관심이 많고 차분하게 주변을 잘 관찰할 줄 아는 성격을 지닌 학생이라면 나무의사라는 직업을 권하고
싶다고 전했다. 전공은 건설조경디자인, 바이오, 산림자원,
생명공학, 원예 등 수목진료 관련 학과를 이수해두면 추후
시험에 응시하기 용이하다.
“현재 제도적 한계상 나무가 어디에 있느냐, 문화재냐 등에
따라 나무의사가 돌보지 못하는 나무들이 있어요. 나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그 나무를 치료하고 살리고 싶은 것이 나무의사로서 바람입니다.”
나무의사 제도란? ‘나무의사(또는 수목치료기술자)’ 자격증을 가진 사람만 나무를 관리·치료할 수 있도록 한 제도. 산림청 지정 교육기관에서 150시간 교육을 이수하고 수목보호기술자, 문화재 수리기술자, 수목치료기술자, 산림·조경기능사 등의 자격증을 갖고 있어야 시험을 치를 수 있으며 1·2차 시험을 모두 합격해야 한다.
글 임승주 / 사진 백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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