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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를 만나다

거창아림고등학교 1학년 실버 학생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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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거창아림고등학교에 평균 연령 78세 실버 학생 14명이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2019년 거창군이 경남 최초로 시행한 문해교육 프로그램 중학교 과정*을 경남도립거창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이수한 어르신들이 고등학교 과정에 등록한 것이다. 60여 년 만에 교복을 입은 이들은 말한다. ‘우리를 부를 때는 꼭 이름과 학생으로 불러주세요.’ 여느 고등학생들처럼 수업을 듣 고, 점심시간을 기다리고, 친구들과 추억을 쌓고, 미래를 꿈꾸는 학생들이 있는 교실. 긴 세월을 보내고서야 갖게 된 소중한 학창 시절을 누구보다 뜨겁게 보내고 있는 1학년 4반 하성원(80세), 신용숙(77세), 정철임(76세), 박옥이(75세) 학생을 만났다.

 


* 문해교육 프로그램 중학교 과정 학력인정 문해교육 프로그램은 의무교육을 받지 못한 18세 이상 성인들을 대상으로 3단계 과정을 이수하면 초등과정 또는 중학과정 학력인정서를 받을 수 있다. 지난해에도 아림고등학교에 18명의 실버 학생이 입학 했으며, 이들 모두 한 명도 낙오 없이 2학년 교과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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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 년을 기다려온 꿈같은 학창시절


거창아림고등학교 1학년


실버 학생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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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 그토록 되고 싶었던 고등학생이라는 꿈


 


 


 


 


Q.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고 하지만, 일흔이 넘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일은 결코 흔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고등학교 진학을 결심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하성원 저는 50년 동안 건축 일을 했어요. 현장에서 오래 일을 하면서 경험도 많이 쌓고, 기술에도 자신이 있었지만 마음속으로 늘 ‘내가 조금만 더 배웠더라면’이라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일흔다섯에 은퇴를 하게 됐을 때 지인이 거창대학 평생교육원에 가면 중학교 졸업증을 딸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줬어요. 너무 반가운 소식이었죠. 그래서 중학 과정에 등록하게 됐고,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아림고등학교에 원서를 내게 되었습니다.


 


신용숙 종갓집 딸로 태어나 중학교까지는 졸업했는데 읍에 있는 고등학교까지 가려면 40리를 걸어가야 해서 집에서 보내주질 않았어요. 평생 이룰 수 없는 꿈으로 마음에 남겨둔 거죠. 그렇게 맏며느리로 시집가서 살림하고, 육남매를 키우고 나니 지금 제 나이가 되어버렸어요. 그러다 우연히 중학교 졸업증이 있으면 아림고등학교에 입학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결심에 망설임은 없었어요. 너무 오고 싶은 학교였거든요.


 


정철임 저는 맏딸이라서 살림해야 된다고 중학교를 안 보내줬어요. 제가 지금까지 정말 많은 일을 해봤거든요. 직장도 다녀보고, 장사도 해보고, 택시 운전도 해보고요. 그런데 학력이 부족하니까 살면서 참 한스러울 때가 많았어요. 제가 머리는 참 똑똑했거든요. 그래서 동생들도 ‘큰언니가 배웠으면 우리가 고생을 안 했을 텐데’ 그런 말을 많이 했죠. 늦었지만 중학교 공부를 끝냈으니 고등학교에 가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박옥이 저도 딸은 더 배워봤자 소용없다고 고등학교를 안 보내줬어요. 그때는 어찌나 학교에 가고 싶었던지 일주일을 굶었죠. 사회에 나와서 회사 생활 하고,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참 힘들게 키웠는데 어느 날 막 내딸이 문해교육 프로그램을 알려줬어요. 거기 가서 엄마 한을 좀 풀어보라고. 그래 서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됐고, 고등학교까지 온 거예요. 


 




Q. 꿈에 그리던 학교에 입학하던 날, 어떤 기분이셨는지 듣고 싶어요. 


 


하성원 입학식 날,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이 직접 우리를 환영해주셨어요. 제 이름이 적힌 이름표를 받고 나니 ‘내가 정말 고등학생이 되는구나’라는 생각에 너무 기분이 좋았지요.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어요.


 


신용숙 며칠 동안 밤잠을 설쳤지요. 입학식 날 강당에 들어서니까 오래전 중학교에 다녔던 기억도 나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마치고 애국가를 부르는 동안엔 목이 메어서 노래가 안 나왔어요. 너무 벅차고, 이런 기회를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정철임교복을 입으니까 날개가 달린 것처럼 너무 기분이 좋았고, 처음 교실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을 때는 ‘여기가 내 자리구나’ 싶어서 감격스러웠어요. 그리고 멋진 우리 김예찬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 되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박옥이 학교에 오고 한동안은 꿈인가 싶어 서 내 살을 꼬집어봤어요. 어릴 때는 학교에 가는 꿈을 그렇게 꿨는데, 요즘에는 늦잠을 자서 학교에 못 가는 꿈을 꿉니다. 학교에 못 가게 될까 봐 그게 무서운가 봐요. 


 




Q. 학교에 오면 하고 싶은 일들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학교에 다녀보니 어떤 점들이 가장 좋은가요?


 


하성원 수업 시간에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게 제일 좋지요. 수학도, 영어도 어렵지만 선생님들이 저희 수준에 맞춰서 애써서 알려주시니까 더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됩니다.


 


박옥이매일 아침마다 내가 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 참 좋습니다.


 


정철임 수업 시간도 좋고, 점심시간도 좋아요. 최고급 식단이라 밥이 정말 맛있고요.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갈 때는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면서 폴짝폴짝 뛰어요. 마음만은 열아홉 살이에요. 다가오는 소풍도 너무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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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수업 후 칠판을 닦는 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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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수학 수업을 듣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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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왼쪽부터 하성원, 신용숙, 정철임, 박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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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수학 문제를 푸는 모습


 


 


 


# 02 다시 없을 소중한 우리들의 학창시절


 


 


 


 


Q. 수학 수업 시간을 잠시 엿보았는데, 다들 정말 열심히 들으시더라고요. 공부를 하는 데 어려운 점은 없으세요?


 


정철임 수업 시간에 아무리 열심히 들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니까 문제지요. (웃음)




신용숙 선생님께서 복습하라고 프린트물을 나눠주시는데 가끔은 그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있어요. 그래서 요즘엔 반장이 프린트물 안 받았다고 하는 사람한테 벌금을 거둡니다. (웃음)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면 살림을 하면서 틈틈이 복습을 합니다. 인덕션에 냄비 올려놓고 그 사이에 영어 단어를 외우고, 밤에 잠에서 깨면 일어나서 또 공부를 하고 그래요. 


 


 


 


Q. 여러분들에겐 지금의 ‘학창시절’이 어떤 추억으로 남을 것 같으세요?


 


정철임 우리끼리는 누구 하나 학교를 그만둘까 봐 서로 용기를 주려고 하거든요. 나약한 소리 하는 사람 있으면 할 수 있다 이야기해 주고, 친구가 몸이 아파서 처져 있으면 집에 가서도 수시로 전화를 해요. ‘약 챙겨 먹어라. 잘 자고 내일 학교 오이라. 니 오늘 몇 시에 올 거고.’ 다들 어렵게 여기에 왔는데 그만두면 안 되잖아요. 그리고 이런 얘기도 합니다. 우리가 졸업을 하고 동창회를 할 때 즈음엔 다들 여든이 넘었을 텐데, 그때는 지금을 돌아보면서 참 젊었다고 생각하지 않겠냐고. 학교 다닐 때 정말 즐거웠다고 웃게 될 거라고.


 


 


Q. 먼 훗날 동창회 풍경이 궁금해지네요. 졸업 후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신가요?


 


하성원 가능하면 대학교에도 진학해서 건축산업기사 자격증에 도전을 해보고 싶고요. 최종적으로는 제 건축 회사를 차려보는 것이 꿈입니다. 혹시나 지금 배운 걸 못 써먹을망정,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지요.


 


신용숙기회가 된다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잔잔하게 들려주고 싶네요. 이웃집 할머니처럼요.


 


정철임 이제 배워서 뭣하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열심히 배워서 대학교에도 갈 거고, 제가 관심 있는 친환경 분야 논문도 써보고 다양한 활동도 해보고 싶습니다. 혹시 압니까? 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될지!


 


박옥이 저는 몇 해 전에 뇌경색이 와서 건강이 그렇게 좋지가 않아요. 그래서 제 꿈은 친구들과 모쪼록 건강하게 학교를 졸업하는 것. 그것만 바라고 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지금. 누군가에게는 학교에서 더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한평생 꿈이었고, 한이었다는 사실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긴 세월을 돌고 돌아 고등학생이라는 꿈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학교에서 보내는 하루 하루가 마치 꿈처럼 느껴진다는 14명의 학생들. 


 


김인자, 박옥이, 손석순, 신용숙, 양금순, 이복희, 이연식, 전예록, 정복달, 정수임, 정철임, 하성원, 황임조, 심순덕.


 


이들의 인생에 지금의 학창시절이 다신 없을 소중하고 행복한 추억으로 남게 되기를. 새롭게 품게 된 꿈들도 꼭 차차 이뤄나가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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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달님 / 사진 백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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