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만나다
우리가 꿈꾸던 학교, 밀양 밀주초등학교
공간혁신으로
우리가 꿈꾸던
학교가 되다
밀양 밀주초등학교
겨울방학이 한창이던 2월 초.
밀주초등학교에 들어서자 조용해야 할 운동장이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무엇을 하고 놀길래 이렇게 신이 날까 싶어
살펴보니 그제야 남다른 운동장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이 ‘낮은 산’이라고 부르는 언덕과
물줄기가 흐르는 개울, 안전한 규사 모래가 깔린 놀이터,
생태 통로로 불리는 동굴이 있는 운동장이라니.
까르르 웃으며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싱그러운 봄기운이 느껴졌다.
구도심에 있어 급격히 학생 수가
줄어들던 학교에서 학생, 교사, 보호자
모두가 행복한 학교로 바뀌게 된 이유.
밀양 밀주초등학교 공간 혁신의 주인공
박순걸 교감 선생님을 만나보았다.

02 운동장에 있는 개울. 봄이 오면 물고기를 기를 예정이다
아이들에게
학교를 돌려주다
밀양시 구도심(가곡동)에 위치한 밀주초등학교는 1946년에 개교해 7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오래된 학교다. 10년 전만 해도 학생 수가 400~500명 규모였지만, 인구 감소와 함께 2020년엔
120명 규모로까지 급격히 감소했다. 밀주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박순걸 교감은 '이대로 가면 학교가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학교를 살려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2021년 9월, 밀주초등학교 교감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박순걸 교감 “부임 후 처음 한 일이 보호자들을 만나는 거였어요. 학교가 어떻게 바뀌길 원하는지 의견을 듣기 위해서였죠.
그때 들었던 이야기가 ‘우리 아이가 밀주초등학교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세요’였어요. 그만큼 학교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 거죠.”
박순걸 교감은 생각했다. 보호자가 마음 편히 아이들을 보낼
수 있는 학교, 아이들이 매일 오고싶어 하는 학교가 되기 위해선 어떤 것부터 바꾸어야 할까? 고민 끝에 그가 찾아낸 해답이
바로 ‘공간 혁신’이었다. 학교 공간은 학교의 주인인 아이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그의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이 밀주초등학교 중앙현관에 있는 ‘꿈자람터’다.
‘꿈자람터’는 270㎡ 크기 1만 6500권의 도서가 있는 북카페·
도서관·놀이터·중앙현관을 결합한 복합문화공간이다. 교장실과 교무실·행정실의 규모를 줄이고, 통로로만 사용했던 중앙
현관을 아이들의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학교에서 가장 밝고
따뜻한 공간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책을 접하고, 저마다 편한 자세로 책을 읽는다. ‘꿈자람터’가 생긴 이후 아이들의 독서량이 세 배 이상 늘었다. 책을 읽고 싶지 않을 땐 한곳에 마련된 놀이공간에서 친구들과 마음껏 놀면 된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사랑받고 존중받는 존재로 느끼길 바랐다는 박순걸 교감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공간이다.
박순걸 교감 “학교에서 아이들은 좁은 교실에서 다닥다닥 붙어
생활하는 데 비해 어른들이 점유하는 공간이 너무 넓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간을 재구조화하는 과정에서 장운익 교장 선생님은 물론 교직원들도 흔쾌히 동의를 해주셨죠.
박순걸 교감은 ‘꿈자람터’가 학생, 교사, 보호자와 함께 만든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다양한 방법으로 의견을 수렴해 공간을 구체화했고, ‘꿈자람터’라는 이름도 공모를 통해 선정했다고. 이 과정을 거치면서 박순걸 교감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어른들의 마음은 모두 같다는 것을.



03 꿈자람터
모든 아이들이
행복한 운동장
‘꿈자람터’와 이어진 공간인 1학년 교실에 들어서면 이번에는
새로운 교실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교실 뒤편에는 놀이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교실에서 교실 밖 덱과 운동장이 연결되어 있어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곧바로 운동장으로 뛰어나갈 수
있다.
박순걸 교감 “저는 아이들이 학교에 오면 친구들과 공부하고
노느라 휴대전화 볼 틈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학교가 제일 재미있는 놀이 공간이 되어야 하죠. 그리고 잘 노는 아이들이 사교성과 협동심이 좋고, 문제 해결능력도 뛰어
나거든요. 미래 인재는 이런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놀아야 잘 큰다’는 박순걸 교감의 믿음은 운동장의 변화도 이끌어냈다. 생태운동장으로도 불리는 밀주초등학교 운동장에는 동그란 언덕과 생태 통로(동굴), 맑은 물줄기가 흐르는
개울, 규사 모래가 깔린 놀이터, 산책로와 작은 숲이 조성되어
있다. 방학 중임에도 운동장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생기가
넘쳐났다.
박순걸 교감 “그동안 운동장은 운동을 잘하는 남학생들 위주로
사용되어 왔어요. 특히 저학년 여학생들은 운동장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죠. 그래서 모든 아이들이 다 같이 놀 수 있는 운동장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자연에서
배우고 느낄 수 있도록 학교 운동장을 하나의 생태학습장처럼
만들어보기로 한 거죠. 봄이 오면 개울에는 물고기가 자라고,
생태 동굴과 언덕은 초록색으로 바뀔 겁니다. 그럼 아이들이
더 좋아하겠죠.”
아직은 개울에 살얼음이 끼는 겨울. 운동장에 찾아온 봄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봄이 찾아오는 듯했다. 추운 줄도 모르고 생태 동굴 주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우리 학교의 좋은 점을 말해달라고 했더니 서로 앞다투어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이정민(밀주초 4학년) “우리 학교는요. 원래는 안 그랬는데요.
운동장에서 물놀이도 할 수 있고, 놀이터도 생겨서 너무 좋아요. 다른 학교랑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강주연·권예서(밀주초 2학년) “운동장에서 놀 때가 제일 재미있어요. 조용히 책을 읽고 싶을 때는 꿈자람터로 가면 돼요!”

04 박순걸 교감
우리가 꿈꾸던
학교가 되다
밀주초등학교의 또 다른 특별한 점은 학교 공간을 보호자와
지역민들에게 열어주는 것이다. ‘꿈자람터’에서는 주말마다 마을 어른이 선생님이 되는 마을학교가 열리고, 운동장에 마련된
작은 숲은 캠핑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운동장 한곳에
는 학부모들의 휴식·소통 공간으로 이용되는 ‘모밀’도 조성되어 있다.
박순걸 교감 “학교는 공공재라고 봐요. 교문의 문턱을 높여서
성공한 교육은 없다고 생각해요. 교사는 몇 년 후면 학교를 떠나는 존재지만, 마을 주민들은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 쭉 함께
하는 사람들이죠. 그러니 학교와 마을이 아이들을 함께 키워야 해요. 밀주초 아이들은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보호자들은 자신의 아이뿐 아니라 전교생의 이름을 거의 외우고 있어요. 이런 환경이 아이들에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요?”
학교의 노력 덕분일까. 얼마 못 가 폐교된다는 소문까지 돌았던 밀주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늘어 1년만에 6학급에서 11학급이 됐다. 학교 맛집으로 소문나 창원과 서울에서 전학을 오고
보호자들은 자진해서 학교 홍보에 나서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은 밀주초등학교를 연구협력학교로 지정하고 올해부터 10년간 학교의 성장과 변화를 지켜보는 종단연구를 시작했다.
박순걸 교감 “앞으로 우리 학교가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해나갈지, 그 속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날지 궁금하고 기대됩니
다. 10년 후 지금의 아이들을 인터뷰했을 때 ‘우리 학교와 마을이 이렇게 나를 키웠어요’라는 말을 해준다면 참 좋을 것 같네요.”
박순걸 교감은 인터뷰가 끝나자 곧바로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학교에서 어른이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인지 자신의
모습으로 알려주는 듯했다. 그처럼 밀주초등학교도 우리에게
그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그렇게 밀주초등학교는 모두가 꿈꾸던 학교가 되었다.
글 김달님 / 사진 백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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