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만나다
요즘 아이들의 달라진 점심시간
“잇츠~ 쇼타임! 행복 버스킹 보러 오세요”
산청고,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 흥겨운 공연 펼쳐
가을볕이 쏟아지는 산청고 교정은 아름다웠다. 지난 2년 동안 들꽃길 조성 사업이 마무리되면서 마치 공원을 연상하게 했다. 점심시간이 갓 지난 시간, 교정 한켠에 마련된 무대로 학생들이 약속이나 한 듯 삼삼오오 모였다. 무대위 스피커에서 고퀄리티 사운드가 흘러나오자 아이들은 환호했다. 점심시간 30여 분간의 행복, 산청고 행복버스킹이 시작됐다. 점심시간 잠시의 여유를 버스킹으로 채우는 요즘아이들. 대견하고 믿음직스러웠다.
글·사진 조경국

아름다운 교정에서 점심시간에 펼쳐진 공연
누구나 설 수 있는 무대, 주인공도 관객도 들썩들썩
“와~”, “꺄르르~” 버스킹(거리공연)의 첫무대를 지켜보던 학생들의 함성과 웃음소리가 교정에 메아리쳤다. 행복 버스킹 첫번째 출연자는 천미숙 교사(인성안전부장)였다. 선생님이 현란한 댄스를 선보이자 학생들의 어깨도 들썩거렸다. 이에 재능과 끼를 모두 겸비한 학생들의 열띤 공연이 이어졌다.
이날 행복 버스킹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지난 5월부터 지금까지 MC를 맡았던 3학년 강운영 학생의 마지막 무대. 다음 MC를 맡은 2학년 김형준 학생회장과 함께 랩을 선보였다. 관객석의 반응이 뜨거웠다. 마지막 무대에 서는 마음을 이야기할 때는 뭉클한 감동이 전해왔다. 강운영 학생은 앞으로 연기자가 될 꿈을 가지고 있다. 실기 면접을 위해 연습했던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김형준이 저를 이어서 2대 버스킹 MC를 맡습니다. 저의 빈자리를 잘 채울 수 있는지 기대가 되면서 한편으론 이제 무대를 떠나니 마음이 조금 울컥하기도 합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렇게 MC를 맡아 버스킹을 진행해 정말 고마웠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을 겁니다. 앞으로도 행복 버스킹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 무대를 만들어주신 선생님들, 그리고 여러분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버스킹 MC 강운영이었습니다. 잇츠~ 쇼타임!”

무대에 오른 강운영 학생이 인사를 전하자 관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오늘은 특별한 무대입니다. MC를 맡았던 3학년 형이 마지막 진행을 하고 이제 제가 이어 받습니다. 형이랑 둘이서 랩을 준비했고요. 요즘 유행하는 춤도 보여주려고요. 친구들 모두 행복 버스킹 무대를 기다립니다. 버스킹 할 때마다 보통 대여섯 팀의 신청을 받습니다. 선생님도 출연하시고요. 노래뿐만 아니라 댄스, 콩트까지 다양한 무대가 펼쳐집니다. 친구들이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대 MC를 맡을 김형준 학생회장의 설명이다.

아이들 성취감 키우는 행복버스킹
어떻게 점심시간에 아이들의 버스킹이 만들어졌을까. “코로나로 지쳤던 아이들을 위해 버스킹 같은 작은 공연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방역수칙을 지키느라 제대로 모이지도 못했는데 이제 조금 자유로워졌죠. 요즘 아이들이 노래 부르는 걸 정말 좋아하잖아요. 산청은 아무래도 문화생활을 즐기기도 어려운 지역이에요. 학생들 대부분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노래방 기기를 구입하고 행복 버스킹을 기획했어요. 5월부터 점심시간을 활용해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을까 고민했던 천미숙 교사의 아이디어는 대성공이었다. 이미 야외무대도 만들어져 있는 상태였고 노래방 기기와 공연장비가 갖춰지자 끼 많은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버스킹 무대에 올랐다. 점심시간을 활용해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버스킹이 있는 날 점심시간이면 자연스럽게 무대가 있는 곳으로 학생들이 모인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것 같아요. 학급에서 존재감 없이 가만히 있던 아이들도 버스킹을 신청해요. 선생님도 친구들도 깜짝 놀랄 때가 있죠. 그럼 다른 아이들도 용기를 내어 무대에 오르고요. 공부만 학교생활의 전부가 아니에요.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걸 해보며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줘야 해요. 행복 버스킹이 아이들에겐 바로 그런 기회죠.”
처음에는 노래를 잘 부르는 학생들 위주로 참여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좀처럼 앞으로 나서지 않고 소심했던 학생들도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고. 공부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행복 버스킹은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자율속에 인성도 쑥쑥 자란다
산청고는 2020, 2021학년도 연속으로 서울대, KAIST 등 유명 대학 합격생을 배출하는 등 대학 진학에도 성과를 내고 있다. 기숙사, 급식 등 모든 학비가 국비 지원되는 점도 산청고의 장점. 학생뿐만 아니라 보호자의 만족도도 높다. 이미 서부 경남에선 명문고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렇다고 대학 진학을 위한 학업만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행복 버스킹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의 인성 교육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관객으로 왔다가 갑자기 출연자로 등장해 노래를 불렀던 강순상 교장은 “학생들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결정이나 실행에 대해선 자율에 많이 맡기는 편입니다. 하지만 자율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걸 항상 강조합니다. 버스킹 무대도 학생회에서 진행합니다. 오늘 잠시 음향기기에 문제가 있었나 봐요. 그래서 그 시간을 메우기 위해 저도 무대에 올랐다”며 미소 가득한 얼굴로 행복 버스킹에 대해 설명했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자기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행복 버스킹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에게 탈출구를 만들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생각해요. 제가 평소에 강조하는 건 ‘인사 잘하는 산청고 학생들’입니다. 선생님들께서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때 꼭 이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해요. 보셨겠지만 우리 아이들이 인사성이 밝아요. 착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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