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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부탁해

꼬깃꼬깃 접어놓은 편지 같은 계절, 가을
가을을 일컬어 흔히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고 한다. 천고마비는 하늘이 높아지고 말이 살찌는 풍요로운 계절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가을을 떠올리면 천고마비보다 “병 주고 약 준다”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알록달록한 단풍과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날씨가 나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속삭였지만, 그 시절의 나는 나갈 수 없었다. 가을 소식은 시험이 다가왔다는 것이기에 학생으로서 공부해야했기 때문이다. 벚꽃의 꽃말이 시험 기간이라는 여담처럼 그 시절 우리에게 단풍은 시험소식을 전해주는 배달부였다. 그래서 지금이 가을인지 봄인지는 아침에 등교할 때만 잠시 느껴질
뿐 그 외에는 계절의 변화가 크게 와닿지 않았었다.
그러나 시험이 끝나면 지친 우리에게 약처럼 주어지는 시간이 있었다. 바로 소풍과 수학여행이다. 학교를 떠나 나들이한다는 소식에 시험이 끝나자마자 반 전체가 들떠 다 함께 꽃단장했던 기억이 있다. 그중에서도 고등학교 2학년 가을,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던 것이 인상 깊게 남아있다. 처음으로 다 함께 간 제주도 여행, 피곤할 터인데도 친구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며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버스에서 친구와 머리를 맞대며 곤히 자던 순간이 가을만 되면 책 사이에 넣어놓은 편지처럼 문득 떠오른다. 가을을 떠올리면 책 사이의 편지를 열어보는 것처럼 따뜻하면서도 한편으로 지난 시절이기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 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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