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꿈꾸다
우리가 움직이자, 학교가 달라졌다

작은 불편에서 변화를 시작한 영산고
‘체인지메이커스’
학교에 매점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부분은 “불편하다”고 말하고 지나치지만, 영산고등학교 학생들은 조금 다른 답을 내놓았다. “없으면 우리가 직접 만들어 보자.” 그렇게 학생들은 선생님을 설득하고, 자신들의 돈을 모아 물건을 사고, 점심시간마다 매점의 문을 열었다. 매점을 운영해 얻은 수익은 다시 지역의 이웃에게 전했다. 작은 불편을 발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직접 해결책을 찾아 나선 학생들. 영산고 동아리 ‘체인지메이커스’의 변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나’를 바꾸는 일에서 시작된 변화
체인지메이커스는 주변의 불편한 점을 찾아 직접 바꾸어 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동아리다.
“처음에는 ‘나 바꾸기’부터 시작했어요. 그다음에는 우리 학교, 우리 지역, 우리나라로 목표를 점점 넓혀 가는 거죠.”
동아리 부장인 태원 군은 동아리의 방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해 처음 만들어진 체인지메이커스는 태원 군을 비롯해 총 13명의 학생들이 활동하고 있다. 동아리에서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나의 습관 바꾸기였다. 재은 양은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을 메모하는 습관을 만들었다. 공부뿐 아니라 그날 끝내고 싶은 일을 한 페이지에 적어 두니 하루의 계획이 한눈에 들어왔다. 태원 군과 현성 군, 완종 군은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기로 했다. 눈을 뜨면 단체 대화방에 메시지를 남기며 서로의 실천을 확인했다. 물론 매일 성공한 것은 아니다. 방학이 시작되자 계획이 조금씩 밀리기도 하고, 일찍 일어나 놓고 다시 침대에 눕는 날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하게 지키는 일이 아니라 다시 시도하는 일이었다. 알람을 듣고도 좀처럼 혼자 일어나지 못했던 태원 군은 이제 스스로 아침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작은 습관 하나를 바꾸는 경험이 학생들에게 ‘변화는 거창한 결심보다 반복되는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려 준 것이다.
매점이 없다면, 우리가 만들면 되니까
자신의 생활을 들여다본 학생들은 두 번째 질문을 꺼냈다. “우리 학교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다른 학교에는 다 있는 매점이 영산고에는 없다는 점이 늘 아쉬웠던 현성 군이 아이디어를 냈다. 간식을 사 먹는 작은 즐거움이 생기면 친구들이 학교에 오는 일도 조금 더 즐거워질 것 같았다. 학생들은 생각에 그치지 않고 곧바로 계획을 세웠다. 운영 방식과 판매 물품 등을 보고서로 정리해 선생님과 학교의 허락을 구했다. 과정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김미연 교장 선생님은 매점이 단순히 간식을 파는 공간에 그치지 않도록 운영 원칙을 함께 고민했다. 간식 때문에 학생들이 점심을 제대로 먹지 않거나 카페인과 탄산음료처럼 건강에 좋지 않은 식품이 판매될 수 있다는 점을 세심하게 짚어 주며, 매점을 보다 건강하고 책임 있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학생들은 이러한 조언을 받아들여 판매 품목에 기준을 세웠고, 빵과 카페인 음료, 탄산음료 등은 제외한 채 허용된 범위 안에서 상품을 골랐다. 운영 자금도 학생들이 직접 마련했다. 동아리원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첫 상품을 구입했고, 판매 대금으로 다시 물건을 들여왔다. 매점 이름은 ‘영.매.사’, ‘영산고 매점 사장님들’을 줄인 말이다. 이름 그대로 학생들은 물건을 고르고, 주문하고, 진열하고, 판매하고, 장부를 정리하는 사장이 됐다. 처음에는 동아리원들이 좋아하는 과자를 중심으로 상품을 골랐다. 운영을 이어가면서 사회 관계망 서비스 계정을 활용해 학생들이 원하는 상품을 조사했다. 반응이 좋지 않은 상품은 빼고 새로운 간식을 들여오며 판매 목록도 계속 바꿨다. 교과서에서 단어로 접했던 자본금과 원가, 판매가, 수익, 재고가 매일 확인해야 하는 현실의 숫자가 됐다. 매점 운영 시간은 점심시간 중 단 15분. 손님이 몰리면 판매와 계산, 장부 기록이 한꺼번에 이뤄졌다. 특히 학생들을 애태운 것은 ‘외상’이었다. 먹고 나서 돈을 보내겠다고 약속했지만 잊어버리는 친구도 있었고, 다른 친구의 이름으로 기록하는 경우도 있었다. 수금을 맡은 현성 군은 몇 번이고 돈을 보내 달라는 메시지를 남겨야 했다. 차장 겸 총무인 완종 군 역시 날짜와 판매 내역이 제대로 기록되지 않을 때마다 장부를 다시 확인했다.
“사 먹는 건 좋은데, 제발 돈은 꼭 보내 주세요.”
웃으며 건넨 말이지만 그 안에는 매점을 직접 운영해 본 학생만이 알 수 있는 고충이 담겨 있었다. 학생들은 매점을 운영하면서 좋은 아이디어만큼 정확한 기록과 책임감, 서로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냉장 보관이 필요한 물품을 가져오기 위해 매번 다른 공간을 오가는 불편도 있었다. 지금 체인지메이커스가 가장 바라는 매점 비품은 크고 화려한 장비가 아니라 작은 냉장고 한 대, 그것도 어렵다면 아이스박스 하나다.

과자 한 봉지가 이웃을 돕는 마음으로
영.매.사의 목표는 단순히 간식을 판매하는 데 있지 않았다. 학생들은 매점을 시작할 때부터 수익을 모아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먼저 살 수도 있었지만, 처음 세운 약속을 지키는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약 6개월 동안 매점을 운영해 마련한 수익금은 30만 원. 학생들은 이를 지역의 이웃을 위해 전액 기부했다. 액수만 보면 크지 않을 수 있지만, 그 돈에는 매일 점심시간을 내어 물건을 나르고 계산한 학생들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매점을 이용한 영산고 학생들도 과자와 음료 한 개를 사며 자연스럽게 나눔에 힘을 보탠 셈이다. 재은 양은 지금도 기부를 마친 뒤에 느낀 감정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몇 달 동안 매점을 운영한 결과가 눈앞에 보이니까 가장 뿌듯했어요. 지금까지 한 일이 헛수고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죠.”
태원 군 역시 외상값을 받지 못해 속상했던 순간과 운영의 어려움이 기부를 마친 뒤에는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다음 수익금도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전할 계획이다. 학교 안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매점이 학교 밖 이웃에게까지 작은 온기로 전해진 것이다.

학교 밖으로 향하는 다음 걸음
체인지메이커스의 시선은 이제 학교 앞의 방치된 사유지로 향하고 있다. 낡은 건물과 쌓여 있는 쓰레기 때문에 악취가 발생하고, 운전자와 보행자의 시야가 가려져 사고가 날 뻔한 일도 있었다. 학교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공간이지만 학생들의 힘만으로는 쉽게 손댈 수 없어 관계 기관에 민원을 넣고 해결 방법을 찾고 있다. “개인의 사유지가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침해할 수는 없습니다”라는 문구의 플래카드도 구상해 두었다. 아직 눈에 보이는 변화가 나타난 것은 아니다. 사유지라는 이유로 해결이 어렵다는 답을 들었고, 학생들의 제안이 받아들여질지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 공간이 정비되면 학생과 주민이 더 안전하게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완종 군은 하나의 변화가 시작되면 주변의 다른 문제도 조금씩 개선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체인지메이커스는 아직 완성된 동아리가 아니다. 매점에는 냉장고가 필요하고, 외상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찾아야 한다. 학교 앞 사유지 문제 역시 해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학생들은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서 이미 하나의 토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후배들이 그 위에서 더 크고 새로운 변화를 이어 가기를 바라고 있다.
나의 습관을 바꾸는 일에서 시작해 학교를 바꾸고, 이제 지역을 향해 한 발을 내딛는 아이들. 체인지메이커스가 보여 준 변화는 거대한 구호가 아니다. 불편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눈, 해결할 방법을 함께 찾는 마음, 잘되지 않아도 다시 움직이는 작은 실천이다. 오늘 영산고에 생긴 변화는 매점 하나뿐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매점을 직접 만든 아이들은 이제 알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첫걸음은 누군가 해 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우리가 먼저 움직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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