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만나다
종이 너머 사람의 이야기를 품다, 경상남도교육청 기록원

흔히 ‘기록원’이라고 하면 오래되고 딱딱한 행정 문서를 겹겹이 쌓아둔 정적인 보관소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여기, 우리의 고정관념을 기분 좋게 깨뜨리는 조금 다른 곳이 있다. 바로 ‘경상남도교육청 기록원’이다. 이곳은 교실에서 웃고 배우던 아이들의 생생한 모습과 학교가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해 온 과정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경남교육의 어제를 지키고 오늘을 기록하며 내일의 교육을 준비하는 특별한 교육 전문 기록문화기관. 이곳에서 기록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있는 문채경 기록연구사를 만나 기록이 품은 따뜻한 이야기와 체험 공간으로서의 매력을 들어보았다.

종이 너머,
학교의 '삶'을 엮어내는 공간
"기록원이 진정으로 지키고 싶은 것은 종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과거를 보존하는 일을 넘어 미래 교육을 준비하는 든든한 토대이지요."
문채경 연구사의 말처럼 이곳은 단순한 자료실이 아닌 생동감 넘치는 기억의 저장소다. 공공기록물이 교육정책과 학교문화의 변화라는 ‘역사’를 보여준다면 이곳에 정성스레 모인 개인이 간직해 온 일기장, 필기노트, 옛 교복과 같은 민간 기록물은 그 시대를 살아간 학생들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특히 졸업앨범에 담긴 교실 풍경이나 소풍을 앞둔 설렘이 적힌 일기장은 누군가에게는 개인의 추억이지만 후대에는 그 시대를 이해하는 가장 생생한 교육 자료가 된다.
그렇다면 이 수많은 기록물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 모든 문서가 무조건 영구 보존되는 것은 아니다. 보존기간이 30년 이상인 중요 공공기록물이 이관되면 훼손 여부를 꼼꼼히 확인한 뒤 복원과 소독 및 탈산 처리를 거친다. 이후 항온·항습이 유지되는 보존서고에서 안전하게 관리되며, 디지털화 작업을 통해 원본 보존과 이용자의 편의성을 동시에 높이고 있다.

디지털 세대 아이들에게
‘시간’의 가치를 가르치다
태블릿과 스마트폰 등 디지털 매체에 둘러싸여 ‘기록’을 쉽게 만들고 지우는 데 익숙한 요즘 아이들에게 기록원의 아날로그 기록물은 특별한 울림을 전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켜켜이 쌓인 '시간의 무게'다. 오래된 사진 한 장이나 낡은 공책을 직접 마주하며 아이들은 "이 기록이 수십 년 동안 누군가의 손을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 왔구나"라는 시간의 무게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나아가 훼손된 기록을 하나하나 복원하고 안정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기록이란 남기는 것만큼이나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는 가치를 온몸으로 배우게 되는 것이다.


세대를 잇는 마법,
그리고 생생한 ‘기록 체험터’
이러한 기록의 힘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든든한 다리가 되기도 한다. 기록원을 찾는 관람객들이 가장 오래 발걸음을 멈추는 곳은 다름 아닌 ‘오래된 학교 사진’ 앞이다. 첨성대 위에 올라가 찍은 경주 소풍 사진이나, 한 교실에 빼곡히 모여 앉은 옛 수업 풍경은 세대 간의 즐거운 대화를 이끌어낸다. 부모님 세대는 "우리 땐 저랬어"라며 추억에 젖고, 학생들은 "예전엔 이렇게 달랐어요?"라며 신기해한다. 기록이 서로 다른 세대의 기억을 나누고 공감하게 만드는 따뜻한 연결고리가 되는 순간이다.
이 같은 감동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해 현재 기록원에서는 경남교육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상설·기획전시와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특히 평소 쉽게 볼 수 없는 보존서고와 복원 시설을 직접 둘러볼 수 있어 흥미를 더한다.
이에 더해 본격적인 2학기부터는 학생 대상 단체 견학을 통해 학교 교육과 연계된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교원 자문위원회와 함께 ‘미래의 나에게 편지 쓰기’, ‘우리 학교 기록지도 만들기’, ‘학급 타임캡슐 제작’ 등 아이들이 스스로 기록을 남기는 참여형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며, 성인을 위한 자서전 쓰기와 가족 아카이브 만들기 등도 계획되어 있어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남길 수 있는 열린 체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기록을 넘어 교실로,
그리고 미래로
놀라운 점은 기록원의 발걸음이 서고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록원의 자료는 단순히 전시용에 그치지 않고 실제 학교 수업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국어 시간의 인터뷰 쓰기, 미술 시간의 옛 사진 창작 활동, 창의적 체험활동의 학교 역사 프로젝트 등 다양한 교과에서 활용될 수 있다. 이를 위해 기록원은 선생님들이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활동지와 디지털 교육자료를 제공해, 학생들이 자신의 삶과 학교를 스스로 기록하는 주체로 성장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점차 디지털화되는 교육 현장의 모습을 미래에 온전히 전하기 위한 고민도 깊다. 공식 문서뿐만 아니라 학교 축제, 동아리 활동 등 교실의 입체적인 일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기록을 수집하고 안전하게 보존하는 것이 기록원의 중요한 과제다.
"오늘의 일상은 내일의 기록이 되고, 우리의 기록은 경남교육의 역사가 됩니다. 다가오는 방학, 가족과 함께 기록원을 찾아 부모님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나누며 소중한 추억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기록을 보관하는 곳을 넘어, 누구나 찾아와 배우고 추억을 나누는 복합문화공간이자 든든한 배움터가 되는 곳. 올여름, 우리의 평범한 하루하루가 역사가 되는 ‘경상남도교육청 기록원’으로 의미 있는 시간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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