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꿈꾸다
남해의 계절이 키운 아이

남해의 계절이 키운 아이
하준이네 보물섬 생활기
남해군 상주면에는 바다와 마을을 놀이터 삼아 자라는 아이가 있다. 상주초등학교 3학년 하준이, 그리고 그 곁에서 남해의 풍경과 사람을 글로 기록해온 엄마 김보람 씨. 두 사람의 일상에는 작은 학교의 하루, 계절마다 달라지는 자연, 마을 어른들의 다정한 인사가 함께 놓여 있다. 남해는 보람 씨에게 천천히 마음을 내어준 생활터전이고, 하준이에게는 태어나 처음 만난 세상이자 고향이다. 자연 속에서 자라는 아이의 시간, 작은 학교의 일상, 그리고 남해를 함께 기록해 온 모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낯선 시골에서,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로
김보람 씨는 올해로 귀촌 10년 차를 맞았다. 지금은 남해의 매력을 글로 알리고, 초등학교와 유치원에서 방과 후 영어 강사로도 일하고 있지만, 처음 시골 살이는 쉽지 않았다. 결혼·출산·육아가 한꺼번에 겹쳤고, 마음을 나눌 또래도 가까이에 없었다. 남편은 바빴고, 낯선 마을에서 갓난아이를 돌보는 시간은 외롭고 막막했다. 그 시간을 지나오게 한 것은 하준이와 함께한 하루들, 그리고 남해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아이가 자라며 생활 반경이 넓어졌고, 마을 사람들과도 조금씩 가까워졌다. 여행지처럼 낯설던 길은 장을 보러 가는 길이 되고, 산책길이 되고, 학교로 오가는 길이 되었다. 어느새 남해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올 만큼 이곳의 삶에 익숙해졌다. 남해는 아이가 태어나 자란 곳이자, 가족의 하루가 쌓인 곳, 그리고 보람 씨가 글로 기록하며 다시 바라보는 삶의 터전이 되었다.
바다와 계절이 키운 아이
하준이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자연과 함께 보냈다. 실제 보람 씨는 가정보육을 하는 5년 동안 매일 아침 돗자리와 모래놀이 도구를 챙겨 바다로 나갔다. 하준이는 하루 종일 모래를 만지고 파도를 따라 뛰었고, 해가 질 무렵이면 집에 돌아와 밤에는 잠들 때까지 그림책을 읽었다. 보람 씨는 아이에게 특별한 무언가를 해주려 애쓰기보다,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다. 함께 걷고, 함께 놀고, 함께 책을 읽는 일.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하준이의 어린 날은 남해의 계절과 함께 자랐다. 도시의 키즈 카페나 체험시설 대신, 하준이 곁에는 바다와 논, 산과 마을이 있었다. 봄에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걸었고, 여름에는 개구리를 잡았다. 가을에는 떨어진 도토리를 주우며 놀았고, 겨울에는 추운 시골집 이불 속에서 고구마를 먹으며 책을 읽었다. 밤에 문을 열어두면 개구리 울음소리와 파도 소리가 들렸다. 보람 씨는 그 시간을 “인생에서 가장 값지고 소중한 5년”이라고 말한다. 그런 시간들 때문일까. 하준이에게도 남해의 자연은 특별한 일상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비가 오는 날이다.
“엄마랑 우비만 입고 나가서 달팽이도 잡고 지렁이도 구경했어요. 빗물이 가득 고인 집 앞 웅덩이에서 옷이 완전히 다 젖을 때까지 신나게 점프하고 놀았는데 정말 재미있어서 아직도 기억나요.”
물론 시골 육아가 늘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하준이가 아주 어렸을 때 고열로 쓰러져 비 오는 밤에 옆 도시까지 달려가야 했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래서 보람 씨는 귀촌을 고민하는 가족들에게 시골의 장점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시골 생활은 유토피아가 아니며, 어디에 살든 장단점은 함께 있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시골이니까 더 여유롭겠지’라는 기대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먼저 살피는 일이라고 말이다.

작은 학교에서 배우는 다정한 관계
하준이는 자신이 다니는 상주초등학교를 무척 좋아한다. 남해에서 태어나 시골 학교만 다녀봤기에 다른 도시 학교와 비교는 할 수 없지만 학교생활이 항상 즐겁고 행복하단다. 학생 수가 많지 않아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세심하게 살펴주고, 전교생이 서로의 이름을 알고 지낸다. 아프거나 다친 친구가 있으면 먼저 나서서 돕는 따뜻한 분위기 역시 하준이가 학교를 좋아하는 이유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체험들이 많아서 1년이 정말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요”
특히 상주초등학교에는 자연과 함께하는 배움이 많다. 학교의 자랑인 생태운동회는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되며, 학생들이 직접 재료를 준비해 저녁밥을 짓고 교실에 텐트를 치고 친구·선생님과 함께 잠을 잔다. 바다가 가까워 맨발 걷기, 생존 수영, 서핑 같은 체험도 이어진다. 어린이 농부 활동을 통해 봄에는 모를 심고, 가을에는 추수해 떡을 지어 먹기도 한다. 하준이가 남해를 좋아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집 가까이에 논과 바다가 있어 자연이 곧 놀이터가 된다. 날마다 친구들과 바닷가에서 수영하며 물고기와 게를 잡고, 좋아하는 곤충잡기도 마음껏 할 수 있다. 정이 넘치는 마을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손주처럼 간식을 챙겨주기도 한다. 하준이에게 남해는 친구들과 뛰노는 자연 놀이터이자, 자신을 사랑하는 어른들이 있는 마을이다. 그래서 하준이의 하루는 이곳에서 조금 더 넓고, 조금 더 다정하게 자라고 있다.

남해를 기록하는 엄마, 남해를 배워가는 아이
보람 씨와 하준이는 한때 ‘하준이와 떠나는 남해투어’ 라는 글을 연재하며 남해 곳곳을 소개했다. 시작은 2022년 남해군 방문의 해였다. 당시 가정 보육 중이던 보람 씨가 홍보 서포터즈로 참여하면서 다섯 살 하준이와 유적지 청소, 캠페인, 온라인 홍보 활동을 함께하게 됐다.
그 모습이 좋은 인상을 남기며 남해군청 공식 SNS에 관광지 홍보 글을 매주 연재하는 일로 이어졌다. 지금도 보람 씨는 지역 신문 시민기자, 경남도청 소식지 남해군 명예기자, KBS 진주 라디오 특파원 등으로 활동하며 남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하준이 역시 어린이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엄마와 함께 지역을 기록하는 경험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보람 씨가 남해에서 가장 고맙게 느끼는 것은 계절과 풍경, 그리고 그 안에서 자란 하준이의 마음이다.
“엄마, 사는 게 어쩜 이렇게 행복하고 즐겁지?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 나를 낳아줘서 정말 고마워”
얼마 전 하준이가 했던 말이 보람 씨의 마음에 오랫동안 뭉클하게 남았다. 부모의 마음이 늘 그렇듯 혹시 부족한 환경에서 키우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아이는 그 안에서 참 밝고 사랑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요즘 하준이는 요리에 빠져 주말 아침이면 볶음밥이나 토스트를 만들어 엄마에게 차려준다. 언젠가는 세계 여행을 떠나기 위해 용돈도 차곡차곡 모으고 있단다. 넓은 세상을 탐험하고, 여러 나라의 음식을 먹고, 멋진 사진을 찍고, 여행을 글로 기록하고 싶다는 하준이의 꿈은 그렇게 남해의 작은 마을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바다는 날마다 다른 빛을 보여주고, 마을은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며, 작은 학교는 서로를 살피는 마음을 가르친다. 엄마 보람 씨는 그 곁에서 남해를 기록하고, 하준이는 그 풍경 속에서 자라며 자신만의 속도로 세상을 배워간다. 남해의 계절이 키워낸 아이는 오늘도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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