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꿈꾸다
우리는 지금 스스로를 믿는 연습 중입니다

수능 D-100. 누군가에게는 달력 위의 숫자이고, 누군가에게는 뉴스 속 한 장면이지만 이들에 게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매일 이어지는 수업과 자습, 모의고사 성적표와 대학 이름, 그리고 “조금만 더”라는 말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시간. 양산 물금고 3학년에 재학 중인 네 학생은 지금 그 시간 한가운데 서 있다. 객실 승무원을 꿈꾸는 총명, 해양 생명과학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는 혜인, 건축 디자인을 희망하는 채은, 항공기 정비사를 꿈꾸는 수환. 수능 D-100을 앞두고, 저 마다 다른 꿈과 고민을 안고 하루를 버티고 있는 네 명의 학생을 만났다.

100일이라는 숫자 앞에서
D-100이라는 말 앞에서 아이들의 마음은 하나로 정리되지 않았다. 실감, 긴장, 부담, 설렘이 뒤섞여 있었다. 총명 학생은 그 숫자를 듣고서야 수능이 더 이상 선배들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이 되었음을 느꼈다. 혜인 학생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시험만 치면 해방”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채은 학생은 늘 응원하던 자리에서 어느새 시험을 치르는 당사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아직도 낯설다고 했다. 수환 학생은 6월 모의고사를 치른 뒤에야 마지막 시험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수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학교생활기록부와 지원 전략, 면접 준비가 현실적인 고민으로 다가오고,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염두에 둔 학생들에게는 모의고사 성적 하나하나가 마음을 흔든다. D-100은 단순히 날짜를 세는 말이 아니다. 수능, 수시, 진로, 체력, 마음까지 모두 붙들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잠을 줄이고 시간을 쪼개고
고3의 하루는 대부분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고, 수업을 듣고, 자습을 하고, 석식을 먹은 뒤 야자를 하거나 학원 또는 독서실로 향한다.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대개 밤 12시를 넘긴다. 하루가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오답을 확인하거나 다음 날 공부를 준비한다. 잠드는 시간은 새벽 1시, 2시가 되기 일쑤다.
아이들이 힘들다고 말한 이유도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 자고 싶을 때 잘 수 없는 것, 친구와 편하게 밥 한 끼 먹거나 영화 한 편 볼 시간을 내기 어려운 것. 어른에게는 사소한 휴식이지만, 고3에게는 가장 먼저 미뤄야 하는 일들이다. 채은 학생은 잠이 많은 편인데도 마음 놓고 잘 수 없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했고, 총명 학생은 친구들과 가볍게 놀거나 쉬는 일조차 어려워진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수환 학생은 먼 통학길까지 더해져 하루가 더욱 길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을 버티게 하는 건 특별한 동기부여가 아니라, 수능이 끝난 뒤 하고 싶은 일들을 떠올리는 작은 상상들이었다.
권총명 “수능이 끝나면 친구들과 여행을 가고 싶어요.”
이채은 “잠 실컷 자고, 좋아하는 게임을 실컷 하고 싶어요.”
이혜인 “넷플릭스를 정주행하고 싶어요.”
김수환 “아르바이트를 해서 직접 돈을 벌어보고 싶어요.”
단지 조금 더 자유롭게 움직이고, 조금 더 스스로 선택하는 삶.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아이들은 상상으로나마 소소한 일탈(?)을 꿈꾸고 있었다.

불안은 조용히 오고 응원은 가까이 있다
사실 고3들이 공부보다 더 힘든 것은 마음이다. 문제를 틀리면 다시 풀면 되지만, 마음이 흔들리는 날에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일부터 쉽지 않다. 혜인 학생은 문득 “이렇게 해서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밀려온다고 했다. 친구들과는 “공부 어렵다”, “이번 시험 어떡하지” 하고 웃으며 말하지만, 마음 깊은 곳의 불안까지 매번 꺼내놓기는 어렵다. 총명 학생도 고3을 직접 지나보니 선배들을 보며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성적표 한 장에 하루의 기분이 바뀌고, 모의고사 결과 하나에 괜찮던 마음도 금세 기울어진다. 고3의 시간은 문제집 위에서만 흐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마음 안에서도 매일 작은 시험이 이어지고 있었다.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준 것은 거창한 응원보다 가까운 사람들의 평범한 말이었다. 힘들다고 털어놓으면 “괜찮다, 조금만 더 힘내자”고 말해주는 부모님, 어려운 문제를 옆에서 같이 풀어주는 친구들, 결과보다 후회 없이 해보라는 말. 멀리 중국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전화 너머로 건네는 “수능 잘 치고 같이 놀자”는 약속도 채은 학생에게는 다시 책상 앞에 앉을 힘이 된다. 수환 학생에게 오래 남은 말은 조금 달랐다. 시험을 망친 날, 아버지의 “됐다, 집에 와서 밥이나 먹자”라는, 무심한 한마디가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마음이 잔뜩 웅크러진 날,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는 말이 오히려 가장 깊은 위로가 된 것이다. 수험생에게 필요한 응원은 때로 더 하라는 재촉이 아니라, 잠시 숨을 고를 수 있게 해주는 한마디였다. 친구가 건넨 “반드시 행복해질 거야”라는 말, 부모님이 보내준 긍정적인 문장, 오래전 읽은 책 속 문장도 아이들의 마음에 남아 있었다. 고3은 혼자 견디는 시간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곳곳에 손잡이가 있다. 부모님의 전화, 친구의 농담, 선생님의 한마디, 집으로 돌아와 먹는 밥 한 끼. 아이들은 그 작은 것들을 붙잡고 다시 하루를 건넌다.

남은 100일 결국 나를 믿는 일
남은 100일 동안 아이들이 세운 다짐은 소박했다. 휴대전화 보는 시간을 줄이기, 아침마다 세운 계획을 지키기, 낮잠에 너무 길게 빠지지 않기, 조금 더 침착한 마음을 갖기. 무엇보다 총명 학생은 스스로를 너무 낮추지 않겠다고 했다. 남과 비교하다 보면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지만, 남은 기간만큼은 자신을 믿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이 시간을 지나며 자신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됐다. 체력이 약하다는 것, 잠이 많다는 것, 때로는 느리다는 것, 때로는 너무 느긋하다는 것. 하지만 그 안에서 강점도 발견하고 있었다. 총명 학생은 목표를 향해 포기하지 않고 가는 힘을, 혜인 학생은 느리더라도 깊이 몰두하는 끈기를, 채은 학생은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을, 수환 학생은 조급해하지 않는 여유를 자신의 장점으로 꼽았다. 같은 길을 걷는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결국 자신에게 건네는 말과 닮아 있었다. 조금만 더 버티자고, 이 시간이 헛되지 않을 거라고, 끝까지 달려보자고. 혜인 학생은 지금의 시간을 알을 깨고 나가는 과정에 비유했다. 답답하고 불안하지만, 그 시간을 지나야 조금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수능 D-100. 네 학생은 여전히 피곤하고,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을 미뤄두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꿈을 말하고, 서로를 응원하고, 오늘의 다짐을 내일 다시 세운다. 어쩌면 고3의 시간은 점수를 만드는 시간만은 아닐 것이다.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는 법을 배우고, 자신을 믿는 법을 연습하고, 조금 더 단단한 사람으로 자라나는 시간. 남은 100일, 지금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크고 화려한 응원보다 이 한마디 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그러니 끝까지, 너의 속도로 가도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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