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꿈꾸다
샅바로 이어진 세 남자

샅바로 이어진 세 남자
김태영, 김주원, 김도현 부자(父子) 이야기
김주원 체급: 한라장사 (105kg이하)
2024 대한체육회장기전국장사씨름대회 1등
2024 전국씨름선수권대회 1등
2024 대통령기 전국 장사 씨름대회 1등
2025 대한체육회장기전국장사씨름대회 2등
2025 증평인삼배 전국장사씨름대회 2등
2025 학산김성률장사배 전국장사씨름대회 1등
2026 학산김성률장사배 전국장사씨름대회 1등
김도현 체급: 태백장사(80kg 이하)
2022 전국씨름선수권대회 1등
2025 증평인삼배 전국장사씨름대회 2등
2025 학산김성률장사배 전국장사씨름대회 1등
2026 학산김성률장사배 전국장사씨름대회 3등
김해 장유고등학교 씨름장에서 만난 세 부자는 첫인상부터 예상과 달랐다. 모래판 위에서 샅바를 맞잡는 가족이라면 왠지 말수가 적고 묵직한 분위기일 것 같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씨름장에는 웃음이 먼저 번졌다. 형이 동생을 놀리면 동생은 지지 않고 받아쳤고, 아버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장난을 보탰다. 세 사람의 대화는 부자지간이라기보다 오랜 씨름부 선후배 같았고, 때로는 친구 같았다. 형 김주원 선수와 동생 김도현 선수, 그리고 두 아들의 아버지이자 씨름 선수 출신인 김태영 씨. 이 삼부자에게 씨름은 가족을 더 자주 마주 앉게 하고,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든 하나의 언어였다. “저희 가족은 진짜 친구 같아요.” 주원 군의 말에 아버지와 동생이 동시에 웃었다. 샅바로 이어진 세 부자의 이야기는 그렇게 유쾌한 웃음 속에서 시작되었다.
“살 좀 빼보자”로 시작된 씨름
사실 처음부터 씨름 명문가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 김태영 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2학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대학 시절 결혼과 육아를 선택하면서 자연스럽게 운동을 내려놓았지만, 씨름은 늘 삶 가까이에 있었다. 그런 그가 두 아들의 손을 잡고 씨름장을 찾은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애들이 너무 뚱뚱해가지고요. 살 좀 빼보려고 씨름부에 보냈죠.”
웃으며 말했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형 주원 군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샅바를 잡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능을 드러냈다. 상대를 넘어뜨리는 순간의 짜릿함, 시합에서 성적을 냈을 때의 희열은 어린 형제를 단숨에 씨름의 세계로 끌어당겼다.
“처음엔 신기했어요. 내가 사람을 던질 수 있다고? 이런 느낌이었어요.”
동생 도현 군 역시 형을 따라 씨름을 시작했다. 형제는 서로 다른 스타일이었다. 형은 차근차근 성장하는 ‘계단형’ 선수였고, 동생은 어느 순간 갑자기 치고 올라오는 ‘엘리베이터형’ 선수였다.
“저는 천천히 꾸준하게 올라왔는데 얘는 갑자기 확 올라와요.”
형의 말에 동생은 멋쩍게 웃었다. 누구보다 가까이서 보고, 서로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형은 동생의 과감함을 부러워했고, 동생은 형의 끈기와 마음가짐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서로 견제하면서도 자극제가 되어주는 가장 가까운 관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형제는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서로를 자극하며 버티게 해주는 존재였다.

“운동보다 가족이 먼저예요”
보통 선수 출신 아버지라면 엄격한 지도자 같은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김태영 씨의 방식은 조금 달랐다.
“억압은 안 하려고 했어요. 화목하게 살자, 그게 제일 컸죠.”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권위적이고 무서웠던 아버지 아래에서 자랐기에, 두 아들에게만큼은 다른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기본기를 가르칠 때까지만 직접 지도했고, 이후에는 아이들을 믿고 한 걸음 물러섰다. 대신 더 많이 대화했다. 경기 결과보다 아이들의 마음 상태를 먼저 물었다. 주원 군이 슬럼프를 겪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학교 시절, 기대했던 성적이 나오지 않자 흔들리던 아들에게 김태영 씨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져도 된다. 나중에 잘하면 된다.”
주원 군은 그 말이 아직도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지금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운동은 결국 자기 자신과 싸우는 일이니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가자는 아버지의 격려 덕분에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빠가 동기부여를 진짜 많이 해줘요.”
반면 도현 군에게는 조금 다른 방식이었다.
“형 반만큼만 열심히 해도 올라간다.”
장난처럼 건네는 말 속에도 아버지의 믿음이 담겨 있었다. 세 사람은 인터뷰 내내 끊임없이 눈빛을 주고받았고, 서로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오래 함께 운동해온 팀처럼, 상대의 표정만 봐도 다음 말을 아는 분위기였다.

씨름보다 더 큰 선물
문득 이 부자가 함께하는 주말이 궁금해졌다. 물었더니, 함께 PC방에 가서 게임을 하고, 외식이라도 하면 고기 30인분은 기본이란다. 그러다 그 때 누가 더 고기를 많이 먹었는지를 두고 또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주원 군은 가족끼리 크게 다툰 기억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운동선수 가족 특유의 긴장감보다는 서로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존재라는 것이다. 물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 김태영 씨는 운동이라는 길이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안다.
“운동시키면서 미안한 마음도 있었어요. 너무 힘든 길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씨름을 하고, 아들들에게 씨름을 알려준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씨름이라는 매개체가 생기면서 세 사람은 전보다 더 자주 연락했고, 하루의 크고 작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게 됐기 때문이다.
“전화도 더 많이 하게 되고, 대화도 많아졌어요. 요즘은 아버지랑 대화 안 하는 집도 많다는데 우리는 하루에도 몇 통 씩 전화하고 계속 이야기하거든요.”
“한라장사 해서 꼭 효도할 겁니다”
형 주원 군의 꿈은 분명하다. 좋은 대학에 가서 운동을 계속하고, 훗날 한라장사 타이틀을 따는 것. 그리고 TV에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을 부모님께 보여드리는 것이다.
“돈 많이 벌어서 효도하고 싶어요.”
동생 도현 군도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형과 같은 무대에 서고 싶고, 언젠가는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단다. 반면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바람은 조금 달랐다.
“혼자만 잘되는 사람보다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어요.”
고생한 부모님을 먼저 생각하는 아들과 아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아버지. 표현은 조금 달라도, 세 사람이 씨름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은 결국 서로를 아끼고 응원하는 마음이었다.
장난을 주고받다가도 씨름 이야기만 나오면 금세 눈빛이 달라지는 세 사람. 서로를 가장 잘 아는 팀 같기도, 가장 열렬한 응원단 같기도 했다. 세 부자에게 씨름은 경기장의 승패를 넘어 가족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든 하나의 언어였다. 그리고 어쩌면 세 사람의 관계를 가장 단단하게 묶어준 샅바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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