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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심코 뱉은 말의 무게를 생각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뱉은
말의 무게를 생각합니다.
쉬는 시간, 복도 가득 시끌벅적한 장난 소리가 들립니다. 웃음을 머금고 지나가는 찰나, 학생들의 날카로운 단어에 그만 발걸음을 멈춥니다.
"야, 너 진짜 무뇌냐? 이걸 왜 몰라?"
"쟤는 진짜 전형적인 에겐남이네, 완전 테토남 아냐? 극혐이다."
"아, 알빠노, 아님 말고, 진지충처럼 왜 이래?"
친구를 놀리며 낄낄거리는 아이들의 표정에는 악의가 없어 보입니다. 그저 유행하는 말을 섞어 쓰며 자신이 조금 더 '세 보이거나', 대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는 즐거움에 빠져 있을 뿐입니다. 특히 요즘은 타인의 고통이나 처지에 대해 무관심을 표현하는 '알빠노'나, 상대의 지적 수준을 비하하는 '무뇌', 특정 대상을 성별이나 겉모습으로 규정짓고 비하하는 '에겐남'이나 '테토남' 같은 단어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뱉습니다. 그것이 특정 집단을 비하하거나 상대의 인격을 깎아내리는 표현임을 알면서도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혹은 더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아이들은 습관적으로 그 단어들을 선택합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며 국어 선생님인 저는 단어의 무게를 다시금 곱씹어 봅니다. 아이들이 재미로 내뱉는 짧은 말 속에는 상대를 향한 '공감의 부재'와 '낮춰 보는 시선'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쓰는 단어는 단순히 소리의 조합이 아닙니다. 단어는 마음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타인을 향한 날카로운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재미와 강함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차별적 언어들을 살피며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의 문장을 더 단단하고 아름답게 가꾸어가기를 응원합니다.
우리말 돋보기
말의 무게를 살피고, 인격의 결을 가꾸는 법
◆ 언어는 사고를 담는 그릇이며, 인격의 거울
무심코 쓰는 'OO충'이나 '에겐남', '테토남' 같은 표현은 특정 집단을 낙인찍고 그 존재를 조롱의 대상으로 만드는 혐오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그냥 유행어일 뿐"이라고 항변하지만, 언어는 우리의 사고를 지배합니다. 거친 말을 내뱉을수록 우리의 생각도 그만큼 거칠고 단순해지기 마련입니다. 또한 뜻도 모른 채 남발하는 외래어나 신조어는 우리 마음의 섬세한 결을 표현할 기회를 빼앗습니다.
◆ 말의 무게를 높이는 단정한 습관
• 내 감정을 설명하는 '구체적인 단어' 찾기
유행어는 우리의 어휘력을 정체시킵니다. '알빠노'나 '극혐'처럼 상황을 뭉뚱그리는 말 대신, 지금 내 기분이 '서운한지', '당황스러운지', '어색한지'를 정확한 형용사로 표현해 보세요. 어휘의 확장은 곧 사고의 확장으로 이어집니다.
• 발화 전 '세 가지' 질문
사실인가? (확인되지 않은 비하인가), 필요한가? (불필요한 공격성인가), 친절한가?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는가)
◆ 혐오의 꼬리표 대신 '고유한 이름'으로 부르기
• 'OO충', '에겐남' 대신
'이름', '직함', 혹은 '친구'라는 다정한 단어를 불러보세요. 특정 집단의 틀에 가두지 않고 한 개인으로 바라볼 때 말의 무게는 정중해집니다.
• '무뇌' 대신
"내 생각과 조금 다르네", "다시 한번 설명해 줄래?"처럼 상대의 상황을 배려하는 문장을 선택해 보세요. 비하의 단어 대신 '질문'과 '기다림'의 문장을 쓰는 것만으로도 대화의 품격이 달라집니다.
• 'OO린이' 대신
'입문자', '초보자', '새내기'로 표현합시다. '어린이'는 비하의 대상이 아닌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입니다. 서툰 상태를 비꼬는 유행어가 아닌 이제 막 시작한 사람을 응원하는 건강한 우리말을 사용합니다.
글: 홍수진
호암중학교 국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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