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꿈꾸다
책으로 자라는 아이들
책으로 자라는 아이들
거창도서관 ‘책 읽는 가족’ 지우·지수네 이야기
경남 거창의 조용한 마을, 책을 닮은 네 식구가 하루하루를 쌓아가고 있다. 아버지 서명근 씨, 어머니 박유수 씨, 샛별초등학교 3학년 지우, 그리고 7살 지수. 이 가족은 2025년 거창도서관 ‘책 읽는 가족’으로 선정되었다. 한 해 동안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만 1,560권. 숫자도 놀랍지만 그 안에는 숫자보다 보다 많은, 책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성장해온 시간이 차곡차곡 담겨 있다.
“책과 함께 자라는 가족입니다”
서로를 한 단어로 표현해달라는 질문에 지우네 가족은 잠시 웃음을 터뜨렸다. “아빠는 성실한, 엄마는 신중한.” 그리고 두 딸을 “다정다감한(지우)”와 “야무진 (지수)”라고 소개했다. 지수는 옆에서 “나는 똑똑함이야”라고 말하며 웃음을 더했다. 지우네 가족에게 독서의 시작은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첫째 지우가 태어난 지 100일 무렵부터 그림책을 읽어주기 시작했고,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던 시절에는 하루 두 시간씩 책을 읽어주던 날도 있었다. 그러다 코로나 시기,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책은 가족의 일상 깊숙이 자리 잡았다. 
도서관은 또 하나의 집
지우네 가족에게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리는 곳이 아니다. 아이들 하원 후 함께 간식을 나눠 먹던 도서관 벤치, 토요일마다 참여했던 ‘책 읽어주는 할머니’ 프로그램, 어린이를 위한 마술쇼를 보며 깔깔 웃던 순간들이 고스란히 쌓여 있는 곳이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주말과 휴관일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도서관을 방문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이들에게 놀이터였고, 부모에게는 숨을 고르는 쉼표였다. 항상 도서관에 가자고 먼저 말하는 사람은 단연 막내 지수였다. 휴관일에는 도서관에 못 간다고 울기도 하고, 어떨 땐 마감 시간에 맞춰 가자고 조르기도 했다. 집에 있는 책을 읽자고 해도 “도서관에 더 재미있는 책이 많다”며 고집을 부렸다. 지수의 최애 장소는 거창도서관 유아자료실. 오늘도 도서관에 도착하자마자 신나서 그림책 코너로 달려가는 지수의 뒷모습은, 이곳이 지수에게 얼마나 큰 놀이터이자 즐거움인지 보여준다. 큰 딸 지우에게도 도서관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곳’이다. 특히 마산 ‘지혜의 바다’ 도서관을 처음 방문했던 날을 잊지 못한다.
“체육관을 도서관으로 만들었는데 너무 아늑했어요. 자료실 안에 카페도 있어서 책을 보면서 망고 주스도 마시고 사진도 찍었어요.”
도서관을 얘기하는 지우의 눈이 금세 반짝이기 시작했다. 두 자매에게 도서관은 단순한 책 대출 공간이 아니라, 가족의 일상과 추억이 함께 머무는 또 하나의 집이었다.
부모의 교육 철학 - “책은 삶을 버티는 힘”
부모가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독서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버지 서명근 씨는 독서의 역할을 ‘창의력 함양’이라고 말한다.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다른 사람의 생각을 통해 보게 되잖아요. 독서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생각하는 힘이 자란다고 생각해요.” 어머니 박유수 씨는 ‘책은 삶을 버티는 힘’이라고 말한다. “책 속에서 타인의 삶을 만나고,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으며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두 사람의 말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한다. 책을 통해 아이들이 단단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가족의 대화도 책을 통해 더 깊어졌다. 어느 날은 환경을 다룬 그림책을 읽고 지구온난화에 대해 길게 이야기했다. 지우는 ‘맑은 세상 만들기’라는 구호를 직접 만들었고, 가족은 서로가 실천을 잊지 않도록 알려주기로 했다. 또 어떤 날은 책 속 장면이 가족의 농담이 되기도 한다. 아빠를 ‘불곰’이라고 부르게 된 일도 책에서 비롯되었다. 『불곰에게 잡혀간 우리 아빠』를 함께 읽은 뒤, 아이들이 아빠에게 불곰 별명을 붙였던 것이다. 책은 지우네 가족에게 대화를 여는 열쇠이자, 서로의 마음을 잇는 다리였다.
책이 키운 꿈, 책이 만든 미래
독서는 아이들의 학교생활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지우는 2학년 때 『마당을 나온 암탉』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쓰는 수업에서 책의 힘을 실감했다.
“영화보다 책에서 읽은 내용이 더 구체적으로 기억에 남았어요. 그래서 줄거리를 더 쉽게 쓸 수 있었어요.”
독서를 통해 쌓인 언어 감각과 표현력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빛을 발한다. “예쁜 말을 쓸 수 있고, 친구들 말에 공감할 수 있어요.” 책이 지우에게 관계의 언어를 가르쳐준 셈이다. 장차 지우의 꿈은 과학분야 기자가 되는 것이다. 과학책을 좋아하는 만큼 여러 곳을 다니며 취재하고, 과학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고 한다. 지수의 꿈은 “지구가 안 아픈 물건을 만드는 과학자”다. 그래서인지 환경을 지키는 이야기를 읽고 나면, 지수는 꼭 실천할 방법을 찾아 가족에게 알려주고 있다.
2026년, 이 가족이 함께 세우는 독서 목표
아빠 “평일엔 동네 도서관, 주말엔 타 지역 대형 도서관을 이용하면서 더 넓은 독서 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요.”
지우 “가족회의 시간에 각자 읽은 책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만들고 싶어요.”
엄마 “올해는 각자의 인생 책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각자 목표는 다르지만, 가족의 마음은 결국 같았다. 책을 통해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고, 또 다른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싶은 마음. 마지막으로 가족에게 “나에게 책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Q. 지우네 가족에게 책이란?”
지우 “책은 추억이다.”
지수 “책은 행복이다.”
아빠 “책은 인생이다.”
엄마 “책은 행운이다.”
결국 책은 이 가족의 삶을 단단히 묶어주는 중심이었다.
책으로 이어진 하루, 책으로 자라는 가족
지우네 가족의 하루에는 늘 책이 놓여 있다. 저녁 식탁 옆에 펼쳐진 그림책, 잠들기 전 나지막한 책 읽는 소리, 도서관에서 들고 온 새로운 책을 둘러싸고 나누는 짧은 대화. 이 작은 순간들이 모여 이 가족의 시간을 단단하게 만든다. 책은 이들에게 지식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방식이 되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만의 세계를 키우고, 부모는 그 성장을 조용히 지켜보며 또 함께 자란다. 그래서 지우네 가족은 오늘도, 함께 도서관으로 향한다.
스크린샷_2026-05-26_오후_2.01.13.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