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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를 더하다
수십만 년의 시간이 겹겹이 쌓인, 고성의 태고적 숨결

수십만 년의 시간이 겹겹이 쌓인,
고성의 태고적 숨결
계절이 바뀔 때면 어떤 도시는 스스로 간직해 온 거대한 시간을 조용히 꺼내어 놓는다. 고성이 바로 그런 곳이다. 흔히 고성이라 하면 거대한 공룡의 자취를 먼저 떠올리지만, 이 도시가 품 은 시간의 결은 그보다 훨씬 깊고 다채롭다. 1억 년 전 자연이 새겨놓은 태고의 지층부터, 푸른 구릉 아래 잠든 옛 왕국의 기억,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지친 일상을 다독이는 잔잔한 바다까지.
고성의 풍경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수십만 년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완성된 역사책과 같다. 자연과 역사, 그리고 일상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고성의 세 가지 명소를 걸으며, 그 속에 담긴 시간의 숨결을 만나보자.

자연이 기록한 거대한 시간의 지층 상족암군립공원
경남 고성군 하이면 해안가에 자리한 상족암군립공원은 중생대 백악기의 생태계가 고스란히 멈춰 있는 공간이다. 파도가 육지를 깎아내고 비바람이 다듬어낸 기암절벽, 그리고 켜켜이 쌓인 퇴적암 층리는 대자연이 억겁의 세월 동안 기록해 온 시간의 지층 그 자체다. 바다를 곁에 두고 조성된 해안 데크 길을 걷다 보면, 넓은 암반 위에 선명하게 찍힌 공룡 발자국 화석들을 마주하게 된다. 교과서 속 활자가 아니라, 어른 얼굴만 한 발자국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며 걷는 순간 아이들의 상상력은 수천만 년 전의 과거로 단숨에 도약한다. 특히 파도에 침식되어 뚫린 동굴이 마치 밥상 다리 모양 같다고 하여 붙여진 ‘상족(床足)암’의 비경은 압도적이다. 해면 가까이 펼쳐진 암반 위를 거닐며 짭조름한 바닷바람을 맞다 보면, 거대한 대자연 앞에서 인간의 시간은 얼마나 찰나인지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소가야의 시간을 마주하다, 송학동 고분군
상족암에서 아득한 자연의 시간을 경험했다면, 고성읍 한가운데 자리한 송학동 고분군에서는 인간이 일궈낸 역사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 고분군은 고성읍 무기산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구릉 주변에 있는 7기의 가야 무덤들이 모여 있는 사적지이다. 도심 한복판, 일반 가옥들과 이웃하듯 어우러진 푸른 고분 사이의 부드러운 산책로를 걷다 보면 역사는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함께 호흡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거대한 무기산 1호분을 비롯해 봉긋하게 솟아오른 고분들은 화려한 장식 없이도 고요한 위엄을 뿜어낸다. 최근에는 맑은 하늘과 푸른 구릉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려는 발걸음도 끊이지 않지만, 이 공간이 주는 진짜 매력은 그 고요함 속에 담긴 옛사람들의 흔적이다. 아이들에게 이곳은 그저 걷기 좋은 공원이 아니라, 찬란했던 해상 왕국 소가야의 역사를 밟으며 스스로 상상하게 만드는 ‘살아있는 박물관’이 된다.

해가 지기 아쉬워 머무는 곳, 해지개 해안둘레길
거대한 자연과 역사의 시간을 지나온 여정은 잔잔한 일상의 공간에서 쉼을 얻는다. 고성 앞바다를 가로지르는 ‘해지개 해안둘레길’은 남포항에서 출발해 남산오토캠핑장, 해지개다리를 거쳐 구선창까지 이어지는 약 1.4km의 걷기 좋은 길이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해지개다리’라는 이름에는 ‘거대한 호수 같은 바다 절경에 해 지는 모습이 아름다워 그립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절로 생각나게 한다’는 낭만적인 뜻이 담겨 있다. 바다 위로 반듯하게 놓인 나무 데크 다리를 걷다 보면, 호수처럼 잔잔한 고성의 바다가 여행자의 발걸음을 다정하게 안아준다. 다리 중간중간 놓인 벤치에 앉아 윤슬이 반짝이는 수면과 갯벌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시간. 특히 노을이 붉게 물드는 시간대에 이곳을 찾으면 차마 발길을 돌리기 아쉬운 황홀한 풍경이 펼쳐진다. 일상의 무게는 파도 소리에 씻겨가고, 마음에도 고요한 평정이 깃든다.

고성에서 배우는 것
고성의 풍경은 서두르지 않는다. 거창한 설명이 없어도 좋다. 수십만 년의 시간이 겹겹이 쌓인 고성의 길을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교과서 밖의 살아있는 배움과 묵직한 위로를 동시에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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